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스페인을 덮친 콜레라로 양친을 잃고 이모 부부에게 입양되어 유년기를 보냈다. 양부모는 그림에 재능을 보인 어린 조카를 발렌시아 미술학교에 다니도록 지원했다. 그는 스무살에 지역대회에서 우승했고, 이듬해엔 전국 전람회에서 2위를 차지하며 호평받았다. “여기서 주목받고 메달을 따려면 죽은 사람들이 출품해야 할 것이다.”
장학금을 받아 로마에서 배우고 파리에서 영감을 키운 소로야는 자연주의, 리얼리즘을 거쳐 곧 자신만의 화풍으로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다. 그는 빛의 효과를 포착하는 것에 주목했다. 클로드 모네는 그를 ‘빛의 대가’라고 치켜세웠다. 야외 작업을 선호하여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거나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즐겨 그렸는데, 시간 속에 덧없이 사라지는 아름다움을 그림 속에 멈춰두려는 화가의 의도와 절묘히 조응했다.
1920년 6월 20일, 그는 자택 정원에서 작가 라몬 페레스 데 아얄라의 부인 초상화를 그리다 쓰러졌다. 부축을 받아 일어나 붓질 네 번을 시도했으나 전과 같지 않았고, 초상화는 미완성으로 남았다. “사람은 그림을 그릴 때 진정 행복할 수 있다”고 믿은 그는 4천 점의 작품과 8천 점의 드로잉, 그리고 아내와 자식에게 보낸 편지 988통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1932년 마드리드의 그의 집과 정원이 국립 소로야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야외에서 천천히 그린다는 건 내게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그러고 싶다고 해도… 우리 주변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 있던가? 수면은 흔들리며 박자를 흩트리고, 구름은 옮겨 다니며 모양을 바꾸고, 저 멀리 보트를 묶은 로프는 느리게 출렁이고, 소년은 뛰고, 저 나무들은 가지를 늘어뜨렸다가 다시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니… 모든 것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고 해도 태양은 그 모두를 움직이게 만든다. 태양은 끊임없이 모든 것의 겉모습을 변화시킨다… 그릴 땐 빠르게 해내야 한다. 안 그러면 당신이 다시 만나지 못할 많은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