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 1955년 경북 경산에 있는 하양이라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다행히 시골에서는 제법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초등학교 5학년 때 부친의 사업 실패로 나의 인생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당시 공부를 제법 잘하였던 나를 하양의 신설 중학교로 보
내는 조건으로 부친은 중학교 설립자가 운영하는 목장의 우유대리점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 대리점은 부친의 재기를 위한 발판이었다.
모든 친구들은 대구의 중학교로 진학하였고, 나는 그 친구들을 만나는 것조차 두려웠고 또한 창피하였다. 그때 무너진 나의 자존감은 환갑이 지난 지금까지도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하였다. 판검사가 되라는 부친의 희망에 따라 영남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하였지만, 판사, 검사는 커녕 대학 졸업도 간신히 할
정도로 놀고 즐기기만 하였다.
당시에는 어지간하면 취업이 되던 시절이라 어렵지 않게 직장을 구하고, 내 나이 27살에 착하고 예쁜 여학생을 만나 결혼하였다. 결혼 3년이 지날 때 즈음 나는 덜컥 중병에 걸리고 말았
다. 내 나이 30살, 아내 나이 26살, 그리고 갓 난 딸 두 명이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나의 인생은 다시 한 번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나의 인생에는 30대가 없으며 구태여 찾아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시간들이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나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던 병도 희한하게 별다른 이유 없이 나아버렸다.
나의 인생은 50살부터 새로이 시작되었다. 남들은 뒤로 물러서는 나이인 50대 중반에도 나의 인생은 계속 진행형이었다.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의 임원과 대표이사를 역임하면서 나의 사회생
활은 환갑이 지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나는 58살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60살에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또한 인생 후반에 이루어낸 나의 자랑거리이다.
이제 60대 중반을 바라보면서 나는 결코 초심을 잃지 않고 청춘들처럼 의욕적으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