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경제학의 방향을 바꾼 경제학자.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에서 수학을 공부했고, 경제학과 철학, 정치, 공공정책을 넘나들며 현대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었다. 추상적 균형의 학문에 머물던 경제학 안으로 불황과 실업, 기대와 불확실성을 끌어들였다.
케인스는 책상 위의 이론가에 머물지 않았다. 인도사무소와 재무성에서 일했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강화회의에 영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베르사유 조약의 과도한 배상금을 비판하며 『평화의 경제적 결과』를 출간해 명성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화폐개혁론』, 『화폐론』 등을 통해 화폐와 금융, 경기변동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1936년에 출간된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은 케인스 사상의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그는 고전학파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한 대공황과 대량실업을 다루면서, 시장이 스스로 균형을 회복한다는 믿음과, 임금이 내려가면 고용이 늘어난다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했다. 케인스에게 고용을 결정하는 것은 임금이 아니라 ‘유효수요’였고, 투자를 움직이는 것은 정밀한 계산이 아니라 예상과 불확실성이었다.
『일반이론』 이후 경제학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 책은 거시경제학의 출발점이 되었고, 정부 재정정책, 중앙은행의 역할, 고용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44년 브레턴우즈 회의에서 케인스는 전후 국제통화질서 설계에도 관여했다.
‘시장은 왜 흔들리는가? 왜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사회 전체엔 재앙이 될 수 있는가? 불황 앞에서 국가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이 있는 한, 『일반이론』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1946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던진 질문과 통찰은 오늘날에도 세계경제를 이해하는 도구로 남아 있다.
이 에세이들을 쓴 나는 불길한 말을 쏟아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정말로 중요한 문제들, 이를테면 인생의 문제와 인간관계의 문제, 창조와 행동과 종교의 문제들이 우리의 가슴과 머리를 지배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희망을 여전히 품고 있다. 내가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경제적 분석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줄곧 낙관적인 전제에 따라 행동하며, 그 전제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비관적인 전제에 따라 행동하면 우리는 언제나 결핍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책을 펴내면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