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시를 통과한 느낌과 사유를 나누기 위해 매일 쓰고 매일 걷는다. 때로 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는 것과 시가 그 말의 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며 믿음의 실천을 궁구하는 공부 길을 걷는 중이다. 산문집 『다시 시작하는 경이로운 순간들: 글이 태어나는 시간』, 『딸기 따러 가자: 고립과 불안을 견디게 할 지혜의 말』 등을 출간했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요. 시의 힘을, 시의 나눔이 일으키는 파장을. 그러니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자주 못을 박겠지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들, 소중한 존재들에게서 우리가 쉽게 눈을 돌릴 때, 시는 바로 그것을 응시하게 만듭니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시의 힘은 그렇듯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어지는 어떤 마음, 어떤 느낌, 어떤 각성, 어떤 파장입니다. ‘시(poetry)’의 그리스어 어원 ‘poiesis’에 바로 그 뜻, 만드는 일 ‘making, forming’이 담겨 있는데 제가 시를 읽는 일 또한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입니다. 미완성으로 머물지만 어느 순간에 도달하는 눈뜸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어떤 대단한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던 것을 되살리고 지운 것을 다시 보게 한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시 읽는 일을 업業으로 하는 제가 저의 시 읽기를 구체적인 글로 나누고자 하는 것도 바로 시가 만드는 그 무엇, 작으나 큰 그 파동을 믿기 때문입니다.
—「들어가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