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성은 오(吳)이고, 전라남도 무안(務安) 출신이다. 조선 중기의 선승(禪僧)으로 처음에 처영(處英)을 은사로 해 득도했으나 뒤에 휴정(休靜)의 문하에서 참학(參學)해 심인(心印)을 받았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외숙부인 뇌묵처영에게 의탁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해 청허휴정이 선조의 부름을 받고 승병을 모으자 사명유정(四溟惟政), 뇌묵처영 등과 함께 승병을 일으켜 왜적과 맞서 싸웠다. 이후 전공을 세워 총섭(摠攝)이 되었다. 전란 후 지리산 화엄사에 있으면서 대화엄종주(大華嚴宗主)로서 법화(法化)를 폈다. 만년에는 지리산 귀정사(歸正寺) 소은암(小隱庵)의 옛터에 대은암(大隱庵)을 중창하고 그곳에서 참선수도에 정진했다. 그는 <사명당 행적(四溟堂行寂)>을 통해 조선의 배불(排佛) 정책으로 겨우 법맥을 이은 벽계(碧溪) 정심선사(淨心禪師) 이하 중단된 조계 법통을 모아 임제태고법통설(臨濟太古法統說)을 창안해 내었다.
자세한 행장은 전해지지 않으나 1636년(인조 14)에 화엄사의 사적을 쓴 것으로 보아 70세 이후에 그곳에서 입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법을 이은 제자로 청간(淸侃)·정환(正還)·설매(雪梅) 등이 있다. 저서로는 ≪중관대사 유고(中觀大師遺稿)≫ 1권, <죽미기(竹迷記)> 1편, ≪화엄사 사적(華嚴寺事蹟)≫ 1권, ≪금산사 사적(金山寺事蹟)≫ 1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