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1988년 한국작가회의 문학무크 『여성운동과 문학 1집』(실천문학사)으로 등단했으며, 1992년 정신대 문제 서사 시집 『그대 조선의 십자가여』(푸른숲)이 한국과 일본(영서방)에서 출판되었다.
2004년 시집 『마녀처럼』(한국문연)을 냈으며 2003년부터 4년간 허황옥 축제를 기획하고 운영한 공으로 2007년 가락국 사적 개발 연구원이 주는 <가야 문화상>과 2009년 여성, 문화 네트워크가 주는 <올해의 여성 신진 문화인상>을 받았다. 2009년 뮤지컬 “가야 여왕 허황옥”을 제작하고 2025년 서사 시집 『가야국 유사』(불휘미디어)을 냈다.
살류쥬의 장정임입니다. 저로서는 너무도 오랜만에 시집을 묶었습니다. 1992년에 푸른숲에서 나온 정신대 문제를 다룬 역사시집 이후 이제야 시집으로 묶이는 이 시들은 8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것들입니다.
를 쓰던 때는 1985년, 여성문제를 시로 이야기하려는 사람이 매우 적을 때 이를 드러내던 저였지만 열악한 정치 노동 현실에 여러 책임을 맡은 저는 너무 바빠서 문학지에 글을 낼 여유도 제 시집 하나 엮을 여유조차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문인이라기보다 여성활동가가 되었고 그간 세상은 많이도 변해서 '여성문제'가 상품이 되기도 하고 여성이란 재제가 많은 문인들에 의해 많이 탐구되었더군요.
저는 중학교 시절부터 지에 고 김용호 선생님의 선에 들기도 했던 문학소녀였지만 가부장제 사회가 제게 맡겨놓은 많은 책임 때문에 희생된 여성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지금은 그런 여성이 별로 없겠지만 저는 저의 가장 큰 욕구인 문학을 희생하며 지내왔고 어찌보면 제 시집은 80, 90년대 일하는 여성의 시로 기록된 역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문학적으로 저는 고정희 시인과 김승희 시인에게 빚진 바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여성민중시인이랄 수 있는 고정희 시인에 손에 이끌려 88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여성분과위가 발간하는 에 첫선을 보이면서 고정희 시인의 뜨거운 자매사랑과 선명한 약자 공감을 배웠고 가장 쉬운 언어로 가장 선명하게 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또한 남도의 치렁한 감성으로 가부장제사회에서 꼼짝없이 붙잡힌 지식인 여성의 슬픔과 분노의 노출에 참으로 솔직하고 탁월했던 김승희 시인의 시집을 통해 언어의 세례를 받은 바가 큽니다. 저는 앞으로도 김승희 시인의 감성과 고정희시인의 역사의식으로 고정희 시인이 제 앞에 남기고 간 여성민중에 대한 시적 천착이란 임무를 잊지 않으려 합니다.
저의 시 대부분은 체험의 산물이며 현장에서의 필요에 의해 생산된 것이기도 합니다. 슬픔과 분노와 희망을 가진 일하는 여성의 체험시로서 저는 이 언덕을 넘어야만 비로소 새로운 문학세계로 갈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한 나약한 여성이 가부장제사회에서 겪는 온갖 고통, 조금만 주체성을 가지고 움직여도 마녀로 처형되는 사회에서 마녀이기를 커밍아웃한 뒤의 소외와 해방감,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지역 김해의 마구 파헤쳐지는 자연을 바라보는 슬픔, 자연에 공감이 제 시집의 뼈와 살입니다.
제 시집이 여성들에게는 위로가 되고 남성에게는 여성 삶의 이해를 주는 책이 되길 바랍니다. (2004년 4월 2일 알라딘에 보내주신 작가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