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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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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다시 던지는 짱돌>

이채필

1956년‌
울산 울주 출생,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1981년
제25회 행정고시 합격, 공인노무사

1982~1992년
노동부 근로기준국, 인천지방노동위원회,
중앙직업안정소, 직업안정국,
노동보험국 행정사무관

1992~2004년
양산지방사무소장, 고용관리과장,
산업보건과장, 임금복지과장, 보험제도과장,
노사정책과장, 행정관리담당관, 총무과장,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선임행정관

2004~2009년
산업안전국장, 고용정책심의관,
직업능력정책국장, 노사협력정책국장

2009~2013년
기획조정실장, 노사정책실장,
노동부·고용노동부 차관, 고용노동부 장관

2013~2020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한국장애인재단 이사장, 경상일보 대표이사 사장,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안전문화운동추진중앙협의회 민간위원장,
롯데·고려아연 감사위원

2023~2026년
고려대 노동대학원 특임교수,
일자리연대 상임대표, 6223 미래포럼 위원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사/배분 실행위원장,
더블유씨피 ESG위원장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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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이채필이 던진 짱돌 1> - 2025년 11월  더보기

프롤로그 –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고시 2차 시험은 하루에 두 과목씩 나흘에 걸쳐 7과목을 논술 형태로 치렀다. 고사장 부근 한옥 민박집을 숙소로 구해 저녁마다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다음 날 아침이면 고사장으로 갔다. 첫날 시험을 치르고 돌아와 숙소에서 다음 날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머무르던 숙소 옆방에 청춘 남녀가 투숙하여 밤새 요란스럽게 뜨거운 밤을 보내는 바람에 신경이 쓰여 도무지 집중하기 어려웠다. 방음이 되지 않아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러다 새벽녘에 잠이 들었으나 눈을 떠보니, 아뿔싸… 시험 시작 20여 분 전이었다. 내 걸음으로는 시간 안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쯤에서 포기하라는 신호인가? 잠시 고민하다가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숙소를 나섰다. 헉헉대며 한성대학교 입구를 향해 경사진 길을 올라가는데 지나가던 승용차 한 대가 멈추었다. 후진하더니 나를 태워주는 게 아닌가? 그렇게 운 좋게 입실하여 가까스로 지각을 면할 수 있었다. 워낙 경황이 없어서 내 일생의 중요한 은인임에도 고맙다는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서두에 이 경험담을 꺼낸 이유는 나의 삶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는 것, 즉 시련이 찾아온 뒤엔 종종 반전이 일어나기도 하였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어릴 적부터 장년이 되어서도 고난과 시련의 순간이 자꾸만 반복하여 찾아왔다는 점이다.어린 시절 나는 취학 통지서가 나오지 않아 학교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두 살 아래 동네 또래를 찾으러 우연히 학교에 갔다가 학생이 되었고, 이후 내 걸음을 흉내 내며 조롱하는 애들을 쫓으려고 길바닥에 널려있던 돌을 주워서 던져보았다. 그 돌멩이가 아이들 옆으로 떨어졌는데 거의 명중할 뻔했다. 뒤돌아보는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바짝 옆으로 짱돌을 던지며 소리쳤다. “까불지 마라”, “또 놀리면 가만 안 둬” 그때까지 나를 따라다니던 조롱은 그렇게 거의 끝났다. 그저 한두 명에게 짱돌을 던졌을 뿐인데, 아이들 사이에 소문이 쫙 퍼진 모양이었다. 어느덧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연민과 안타까움이 되었다. 몇 년 전 아내가 물었다. “장애로 사는 것과 억울한 옥살이 중 어느 게 더 힘든가?”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장애’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왕이면 가고 싶은 곳 가보고, 하고 싶은 것 하며, 맘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힘에 부치는 노동이라도 뭐든 기꺼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모든 걸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장애는 나에게 분명한 불가능이었고, 일생을 따라다니며 포기가 무엇인지 나를 훈련시켜 준 고약한 핸디캡이다. 학창 시절 “건강한 신체(身體)에 건전한 정신(精神)이 깃든다”라는 구호가 널리 쓰였는데,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정신도 어딘가 부족하기 마련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어 나 같은 사람이 듣기엔 참 잔인한 말이었다. 대학 4학년(1980년)이 되어서야 고향 집에 전기가 보급되었을 정도로, 나는 호롱불을 켜고 살 만큼 낙후된 시골에서 자랐다. 거기에다 가난한 농사꾼 부모님에게 물려받을 유산도 변변찮은 척박한 환경에서 인생을 시작했다. 나는 결코 능력이 출중하거나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다만 조금은 남다른 강단과 배짱은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나더러 꿰뚫어 보는 직관이나 순발력이 있다고 하는데, 스스로 보기에도 어려움을 만나면 어디에서 샘솟는지 모를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용기, 맞다고 생각하면 밀어붙이는 뚝심에, 좀처럼 쫄지 않는 편이다. 이런 성향과 기질로 인해 쉽사리 포기할 줄 몰랐고, 때때로 발현된 도전적인 아이디어가 나로 하여금 에너지 넘치는 자세로 이끌었다. 덕분에 조롱을 받던 아이가 장차 자신과 사회의 미래를 열어가는 역전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하필이면 ‘못 가진 것이 많았다’가 아니라 ‘남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내면의 자산가였던 셈이다. 지나고 보니 삶의 여러 길목에서 닥친 고난에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주저앉지 않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며 받아들인 덕분에 열린 미래였다는 생각이 든다. 행정공무원이 된 사정이나 고용노동 분야에서 일하게 된 데도 특별한 사연이 있다. 어릴 적 외딴 마을에 살면서 세상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라디오였는데, 어느 날 우연히 “세상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행정이고, 현대국가는 행정국가다”라는 말을 들은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행정’이라는 단어에 감동을 받은 나는 대학 진학 때 법대나 의대가 아닌 행정학을 전공하고, 공무원도 행정고시에 응시하고, 운이 따라준 덕분에 행정가가 될 수 있었다. 신임 관리자 교육을 받는 동안 각 부처의 임무를 살펴보니, 일하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부처가 노동부였다. 세상에 사람보다 더 귀한 존재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다. 노동시장에 진입하여 은퇴할 때까지 생기는 고용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노동부야말로, 사람의 일생(一生) 가운데 가장 황금기(黃金期)인 ‘청년-중년-장년기’ 내내 직업생활의 가치가 높아지도록 도와주는 곳이었기에 보람이 클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하여 노동 행정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정부의 고용정책을 총괄하는 고용노동부로의 확대 개편을 거치며, 눈 깜짝할 사이 30여 년의 세월과 청춘을 온전히 바쳤다. 필자의 공직 인생은 시작 단계부터 사고뭉치였다. 수습이 끝나고 처음 배치된 부서에서 맞이한 회의에서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간부회의를 마치며 “과장인 나는 과장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국장의 입장이 되어 일할 것이니, 사무관 여러분들도 스스로 과장이라는 생각으로 일해주세요”라는 과장님의 특별훈시가 있었다. 하늘 같은 상사의 당부 말씀을 듣고 공직자로 살아가는 데 지침이 될 만한 귀중한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 반문하고 말았다. “제 위에 과장님이 계시지만 그 위에는 국장과 실장, 차관 나아가 장관이 최종 결재자인데 보고와 결재를 받는 단계마다 지적받거나 깨지면 되겠습니까? 그러니 과장님은 처음부터 최종 결재권자의 시각으로 일해야 하지 않습니까? 또한 사무관도 그런 입장에서 기안해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며 겁 없이 대들고 말았다. 예기치 않게 내뱉은 나의 말 한마디는 스스로를 가둔 ‘말 감옥(監獄)’이 되었고, 이후 평생을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며 지냈다. 왜냐하면 “이 사무관, 장관처럼 해야 한다고 하더니 겨우 이 정도밖에 못했어?” 하는 지적이 돌아올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정제되지 않은 그날의 말대꾸 한 번이 공직 인생 내내 일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을 다잡아 주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더 깊은 고민과 더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럴수록 사회의 여러 병리 현상이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하는 ‘사회의 의사’가 되기 위하여 나는 ‘내 일의 주인공’이라는 자부심과 책임감, 열린 시각과 아이디어로 실천에 나섰다. 필자는 사무관에서 서기관, 과장, 부이사관, 국장을 거쳐 직업공무원의 정점인 고위공무원(가급)에 이르렀다. 이후 정무직인 차관과 장관직도 역임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선두 주자로 앞서 나간 것은 아니었다. 특히 사무관이나 서기관, 과장을 맡았던 실무자 시절에는 ‘일하는 사람 따로, 실속 차리는 사람 따로’였던 현실 속에서 상사의 ‘근무 지시’, ‘직무대리 겸직’ 발령 등 일 구덩이에 빠져서 헤매기 일쑤였다. 나 역시 한 인간으로서 때론 서운한 마음이 들고 흔들릴 때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필자는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애썼다. 왜냐하면 공무원 임용을 앞두고 받은 채용 신체검사에서 (한쪽이 아닌) 두 다리 모두가 소아마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야말로 금수저나 은수저는커녕 흙수저 출신으로 밑바닥(zero spec)에서 출발하였으니, 단지 공직에 헌신할 기회가 부여된 자체만으로도 소중했기 때문이다. 부처나 조직의 구성원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서에 맡겨진 과업을 이루기 위하여 존재 이유를 입증해야 한다. 처음부터 나는 정책을 수립하고 조정하는 본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는데, 이후에도 할 일이 많은 ‘비인기 부서’나 현안으로 부대끼는 ‘기피 부서’에 배치되기를 반복했다. 즉, 내가 원하는 업무나 부서가 아니라 현안 과제를 처리하기 위하여 조직이 부르는 곳에서 일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내 눈에는 가는 곳마다 크게 주목받지는 못해도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야 할 일들이 태산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 더 이상 잃을 게 없던 나로서는, 시작한 사무관으로 평생 일한다 해도 행운(幸運)으로 여긴 초심(初心)을 잊지 않으려고 각오를 다졌다.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스스로 맡은 일을 잘하는 것 외에는 뭘 바라거나 쪼잔하게 욕심내지 않게 되었다.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밑바닥 정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금수저나 은수저가 불을 만나면 녹아 버리지만 흙수저는 불로 구우면 더욱 강해져 도자기나 항아리가 된다. “세상에 헛된 고통은 없다”라고 말하듯, 시련이 나를 죽이지 못하면 더 강하게 단련시켜 주었다. 나는 거의 모든 실·국에서 실무를 맡아 사업(정책) 분야에서 근무한 경험이 축적되고, 현안에 헌신한 실적이 쌓이면서 차츰 인정받게 되었다. 부족함이 많지만 그래도 나의 진의를 알아주고 너그럽게 받아준 선배와 상사 덕분에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나는 세상에 많은 빚을 진 셈이다. 운이 닿아 행정고시(제25회) 차석 합격이라는 비교적 괜찮은 성적으로 공직을 시작하긴 했어도, 나는 스펙이 뛰어난 다른 친구들처럼 장차관이 될 꿈은 꾸어 본 적도 없었다. 단지 ‘무엇이 되기’(what to be) 위하여 아등바등하는 것보다, 주어진 자리에서 ‘필요한 일 하기’(what to do), ‘원점에서 해법 찾기’(how to do)에 더 익숙해졌다. 이런 성격이 일중독(Workholic) 인생의 궤적을 걷게 한 요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커다란 조직이 나같이 작은 한 개인에게 신세를 지는 사례가 쌓일수록, 이상하게도 시원찮은 대접도 불만으로 느껴지기보다는, 남에게 빚지지 않았다는 뿌듯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이 책은 필자가 고용노동부 공직자로서 맡은 일을 어떻게 처리해 왔는지, 어려움에 부딪히거나 개혁을 추진하면서 돌파한 방법과 과정들을 살펴보고, 시행착오나 아쉬운 점, 그리고 우리의 미래 도약과 새로운 모색을 위한 제언을 담은 고백록이다. 또한 청와대와 관련 부처를 비롯한 행정부 내부에서의 사건들, 여의도 정치인과의 협력과 갈등 사례들, 정치적 이유로 얽히며 당한 고초 등 내가 직접 겪은 일과 인생의 궤적이 담긴 생생한 기록이다. 내 딴엔 『목민심서』나 『징비록』을 쓰는 심경으로 정리한 결과물이다. 특히 고용노동 행정을 하면서 필자가 매달린 지향점은 단순히 옳고 그름의 차원이나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정책이나 제도 개혁이 성장-고용-복지의 선순환에 더 도움이 되느냐였다. 이 책은 고용노동 정책을 만들고 효과를 내기 위하여 주야장천 고민하고 실천한 기록이다. 모두 3부작이다. 다만 이번에 [1편] 제1장 짱돌의 시작 – 나의 선택, 노동행정, 제2장 일자리와 현장 – 정책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 제3장 소용돌이의 노사관계 – 법과 갈등 사이의 줄타기, 제4장 13년 만의 노동 개혁 – 복수노조 시행과 노조 전임자 폐지, 그리고 [2편] 제5장 안전과 정의 – 산업재해와 중대재해법의 이면, 제6장 이상한 나라의 국회와 행정부 – 행정과 정치, 관료제의 책무성, 제7장 개혁의 그늘 – 짱돌 이후, 성찰과 책임, 제8장 우문현답 - 밑바닥 정신으로 먼저 세상에 내보낸다. 이에 기업에서 노사관계나 안전보건, 인적자원관리 업무를 맡고 있거나, 고용·노동 정책과 행정을 다루는 공무원, 관련 연구나 사례분석, 공사 조직의 진단과 컨설팅, 리더십 개발 등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실직고(以實直告)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아 영욕의 세월과 행적까지 그대로 담았다. 개인적으로 부끄럽게 생각했던 약점까지 드러내 정직해지고 싶었다. 스스로에 취해 더러는 자화자찬도 하고, 나의 잣대로 잰 나머지 뒷담화를 하기도 했다. 단편적인 기사로 드러나지 않는 내부의 비화(秘話)는 드라마적 요소로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에 충실하려 했을 뿐 호불호를 가려 쓰지는 않았다. 독자에게 약간의 재미라도 준다면 그것도 좋겠고, 이를 통해 어떤 시사점을 얻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필자가 감사드려야 할 분이 많다. 청춘을 바쳐 최선을 다해 일한 고용노동부 여러 상사와 선배, 열정적으로 일한 동료와 후배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일하면서 받은 도움과 조언, 때로는 반면교사가 되어주신 분들의 사연들이 담겨있다. 본의 아니게 누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심적 부담 속에서도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노동부 내부 출신 1호 고용노동부 장관’이라는 무게감이 주는 의무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 소개하는 사례에서 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는 털끝만큼도 없다. 오직 공익적 목적으로 이 글을 썼지만 세련되지 못한 표현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필자의 부족한 ‘필력’ 탓이다. 건너뛰거나 생략하느라 줄여서 기술한 부분은 맥락과 행간으로 이해해 주시고, 부족한 점은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란다. 그럼에도 오류가 있다면 다른 방법이 아니라 이를 바로잡는 제2, 제3의 글이 나오길 소망한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흔쾌히 출판을 허락해 주신 도서출판 행복에너지 대표 권선복 회장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원고를 꼼꼼하게 읽고 정성스럽게 다듬어 주신 한영미 작가님과 김소영 디자이너님을 비롯한 편집부 관계자 여러분에게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또한 초고를 꼼꼼하게 읽고 이 글이 가져올 파장과 우려는 물론 구성에다 오타까지 잡아준 박도제 기자님, 정진우 기자님, 최상률 노무사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조언과 감수를 넘어 원고를 사정없이 칼질해 준 아내 하혜숙 여사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에 지극히 고마운 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하려고 한다. 두루 감사하다. 2025년 7월 관악산 동편마을 서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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