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에 천애고아가 되어 머슴살이로 10대를 보내고
검정고시로 학업을 마치고 신학대에 들어가 기독교를 연구하며,
앓던 병만 9가지, 살기 위해 의술을 배우고, 약초를 연구하며
사람의 영과 육을 살리는 목사가 되다.
[수행은 어떻게 하는가?]
불교의 화두가 1700여개가 있듯 수행에 특별한 방법이나 테크닉을 우리 센터에서는 내세우지 않는다. 풀 한포기에서 고목나무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는 고유한 존재이며 숲과 나무들이 모여 하모니를 이루는 Oneness Meditation 우리는 명상의 궁극으로 본다.
그리고 노동의 신성함과 평범한 삶을 지향하며 헌금을 요구하거나 종교를 빌어 겁주지 않는, 웃음과 평안을 창조함을 명상의 본질로 생각한다.
나는 장로교 통합교단과 사당동총회 합동교단에서 신학을 했으며 신학은 하나의 통로였을 뿐 나의 사상은 개별적임을 밝힌다. 교회가 세속의 심판을 받고 붕괴되는 현실을 바라보다 안타까워서 유튜브(에 40년 연구의 농축액을 과감히 밝힌다. 방문객들에게는 침식을 제공하며 물질을 요구하지 않고 성실히 상담해줄 것이다. 유튜브 채널명 : 하나명상
나는 틀림없는 기독교(基督敎, 터를 지키다) 목사다.
35년 동안 말로 다 할 수 없는 경험과 이론 무장을 한 58세의 힘 있는 중년이다. 두 권의 성경을 낡게 하면서 35년 이상 잠 못 이루고 성경을 연구 봉독했다. 어느 날부터 비교종교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나의 의식은 지구촌 구석구석을 뒤지며 여행하기 시작했다.
저마다 이론을 갖고 포교(布敎)를 하는 수천 개의 종파들, 내세(來世)의 천국(天國)과 평화, 이웃사랑을 말하는 기독교 역사를 넘나들며 나는 고뇌의 여행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확신이나 이념이 흔들려서가 아니라, 객관적 시각이 발달하면서 이 땅에 자라나는 종교적 교리들과 사악한 인간의 피 냄새나는 다중적(多衆的)인 구조물을 바라보면서 의심이 일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살인하지 말라는 교리를 가진 유일신 교리를 내세우는 기독교국에서 200여 년이나 이어진 십자군전쟁, 장미전쟁, 기타 전쟁으로 1억 명의 군인이 죽었고, 그것도 모자라 소년십자군 수도사들이 검을 들어야 했던 템플기사단 같은 역사는 두렵다 못해 소름이 끼치는 상처들이다. 여기에서 파생된 볼셰비키 멘셰비키 혁명으로 생지옥보다 더 처참한 대학살에 이천사백만 명 이상이 죽었다.
인도의 크리슈나 전쟁이나 공자, 노자, 장자, 열자, 한비자 등 성인과 무수한 사상가를 배출한 대국을 자랑하는 중국이 영토 확장 목적으로 티베트를 짓밟고 수천 명의 승려들을 처형하는 행위 등은 인간 속에 서식하는 맹수의 영혼이 날뛰는 악행이다. 어찌 고급 교리를 자랑하는 종교들이 맹수들도 않는 살생을 일삼으며 무슨 평화니 영친 운동이니 자비니 운운하면서 교세 확장을 하는지 두렵다. 모두가 독선(獨善)뿐이며 흑(黑) 아니면 백(白)이다.*
* 중국으로부터 받는 티베트의 박해는 사실상 카르마로 연결된다. 고대 티베트인들은 중국 당나라와 인도의 여러 부족을 쳐서 학살하고 잔혹하게 핍박했었다.
근사한 교리를 자랑하는 종교들이 이같이 따로국밥처럼 생활하는 사실에 첫 번째 의심을 품고 나는 한없이 방황했다.
또 하나의 의심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육체의 부활(復活)과 불교의 근본 교리인 윤회(輪廻)와 환생에 대하여 단 하루도 편히 잠을 자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 병약하고 심약한 나 자신이 생명에 대한 욕구가 강렬했기에 집착이 남달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한 방황과 의심과 탐구의 시간이 수십 년 세월로 흘렀다.
10세에 천애 고아가 되어 이불 없이 잠을 자고 얼어 죽을 고비, 굶어 죽을 고비, 9가지 병을 앓으며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겪었다. 나는 이 땅에 소망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었다. 저 유명한 톨스토이의 명언대로 죽음만이 영원한 휴식이며 죽음만이 위대한 의사인 줄 알았다.
사실 정확히 4번 자살을 시도했었다. 기관지 확장으로 밤새 기침을 하고 앓다가 견딜 수 없어 강물에 몸을 던졌다. 떠내려가면서 거의 죽게 되었는데 나보다 네 살 위인 인수라는 분(지금 청주에 거주함)이 뛰어들어 살려냈다.
머슴살이가 너무 힘이 들고, 극도의 영양실조에 소망이 끊어졌다. 밀려오는 미래에 대한 강박과 불안과 고독이 너무 무섭고 두려워 정말 살고 싶었지만 더는 이 세상에서 살아갈 자신감이 한쪽도 없어 눈을 감고 벼랑 아래로 몸을 날렸다.
도토리 따러 온 같은 마을의 상호 씨 할아버지에게 발견돼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70년 9월 초 아버님 산소에 마지막 벌초를 마치고 ‘스미치온’ 살충제 300cc를 막 뚜껑을 따고 마시려는 찰나 집안 조부님 장두희 어른께 들키고 말았다. 돈 없고 집 없고 일가친척 없는 두려움에 9가지 병까지 시달리던 내게 그 마지막 방법이 죽음이었다. 항상 상여나 초상집을 보면 부러워했고 상여 나가는 광경을 눈여겨보면 언젠가는 저렇게 죽을 거 차라리 이렇게 집도 절도 없이 병마에 시달리느니 일찍 죽는 게 소원이었다.
어렵게 소주 4병과 수면제 60알을 구해서 모았다. 한꺼번에 다 털어 마시고 원통골이라는 굴천재 밑 골짜기 형석(螢石) 채굴 광산 동굴에 들어갔다. 71년도 8월이었다. 실패였다. 심한 구토로 똥물까지 토했다. 나흘을 앓고 다시 살아났다.
이 비극적인 얘기는 내가 신앙에 귀의하기 전 아주 힘들었을 때의 사건들 중에서 반추한 기억들이다.
세월이 흘렀다.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정리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냈다.
3차례의 40일 금식, 99년도의 100일 기도(64일 이후에 채소와 죽염 섭취) 등으로 영계(靈界)의 비밀과 환생(還生)과 부활(復活)의 모든 신비가 정리되고 해결되었다.
천국이나 극락, 지옥은 입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심은 대로 거두는 진리, 즉 이치에 입각한 삶의 결과를 통해서만 인간의 길흉화복과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터득했다.
머리말에 ‘왜?’ 이토록 엉뚱한 말을 늘어놔야 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독자들은 이 책의 목차를 보면서 관심이 내키면 천천히 읽고 그렇지 않으면 덮으라. 그러나 마지막 장을 덮는다면 그대는 확실히 느낄 것이다.
아! 진리만이 인간을 자유케 하는구나!
진리! 참된 이치란 뜻이다. 인생은 왔기에 가야하고 갔기에 다시 와야 한다. 가고오고, 오고가고 물레바퀴처럼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끝없이 돌아치는 것이다. 구원, 즉 자유의 해탈을 얻기까지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지위고하 없이 이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
심령과학, 최면술, 고승들의 견해, 명상가들, 기타 견해를 모아보며 인간은 대개 700~1,000생을 윤회하면서 나고 죽음을 거듭한다고 한다.
필자는 성격이 즉흥적이고 단순하면서 흑백논리이다. 꾸밀 줄도 모르고 글이나 편지를 쓰되 다듬을 줄도 모르며 수정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글은 어떤 작품이 아니다.
이 책은 “장석열 복음(福音)”이라 할 수 있다.
시대가 바뀌어 가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때가 되어 이 책을 세상에 내어 놓는다. 천재 피아니스트 명상음악의 대가 임 동창 선생의 권유에 힘을 얻어 이 글을 쓴다. 단 몇 사람이라도 영혼이 자유로워지길 바라면서 본서 중간 중간에서 만나보자.
이제 우리는 만들어진 신에게 절하고 재산을 헌납하고 종노릇해서는 안 된다. 혹세무민이 아직도 먹혀 들어가는 이 무지한 인간사에 어두운 터널을 비추는 한 가닥 촛불이라도 밝혀주는 편지가 됐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정말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 ‘추억의 소야곡’을 부르며 차나 포도주 비슷한 거라도 한 잔 할 날을 기약하면서 지구촌 우리 가족들 모두 형제임을 자각하며 제발 싸우지 말고 편히 살기를 거듭 나는 기도해야겠다.
할렐루야!
錦山 錦江변에서 2010년 겨울
마지막 생을 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