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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오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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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이것이 사주명리학이다>

오종호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취업, 창업의 과정을 경험했으나, 운명적으로 예비된 길은 따로 있었다.
누구나 높은 수준의 사주 독해에 이르게 해주는 논리정연한 방법이 있음을 알려주는 교과서 같은 입문서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 책에 공들였다.
유튜브 ‘운인사명리’를 통해 사람들이 진정한 명리에 눈뜰 수 있도록 안내하며,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로서 브런치에 많은 양질의 글을 쓰고 있다.
<담백한 주역> 1, 2, 3권, <나는 그대 곁으로 가고 싶다>, <사랑, 별을 빚는 그리움> 등의 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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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이것이 사주명리학이다> - 2024년 11월  더보기

들어가며: 질문하라, 명리학은 답해 줄 것이다. 철학적으로 어느 지위에 있느냐와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어떤 시선을 받느냐와 무관하게,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하는 사실상 유일한 학문이 명리학입니다.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면 우리 운명의 설계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곧장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지는 못합니다. 대신 여러분에게 그 답으로 향하는 길을 제시할 수는 있습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설계자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하지만 전자의 질문이 소중한 이유는 그것은 '운명'의 존재를 인식한 후에야 던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눈으로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보게 만들어 주며 '나'라는 존재의 존재성에 대해 진지한 사유를 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유는 나 자신과 타자에 대한 깊은 이해로 우리를 이끕니다. 저는 처음으로 명리학 책을 손에 쥔 30대 초반 이래 오랫동안 회의와 탐구를 거듭해 왔습니다. 어느 덧 20년 세월을 넘어섰지요. 명리학 고전을 포함해 많은 책을 읽었고 그때마다 난삽한 이론들과 저마다 최고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오만함에 치를 떨어야 했습니다. 운명의 실체에 대한 깨달음은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실체가 있는 것인지 자주 회의했고 그로 인해 명리학을 멀리하기도 했습니다. 먹고 살아야 했기에 생활인으로서의 욕망에 천착하면서도 저는 잡히지 않는 운명의 실체에 사로잡혀 책 속에서 방황하기를 거듭했습니다. 지금은 압니다. 운명의 설계자가 저를 어디로 이끌고자 했는지를. 길에서 벗어나지 말고 저의 소명을 다하라는 하늘의 뜻을 알게 된 이후로 비로소 저는 제 인생을 휘몰아치던 바람이 진정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명리학은 어려운 학문입니다. 어쩌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 가운데 가장 어려운 학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 학문이 어려워진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학문 자체의 난해성 때문이 아니라 이론 체계의 모호성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론의 다양성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철학이란 근본적으로 통일된 사유가 불가능한 학문입니다. 철학이 특정한 이론을 절대적인 진리로 수용하는 공부가 아니라 사유하는 방법 그 자체에 주목하며 정신을 파괴하고 해체하여 새롭게 창조하는 과정이라면 이론의 다양성이 명리학이라는 철학의 약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론 체계의 모호성이란 각 이론이 운명의 해석이 가능하도록 유기적으로 연결된 대신 오히려 그것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성질을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진리의 미덕은 단순함입니다. 저는 오늘도 가장 단순한 명리학을 향해 더욱 깊이 정진하고 있습니다. 저는 철학, 종교보다도 명리학이 더 위에 있다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가 깨달은 한 명리학은 인문학의 기초이자 기반의 자리가 어울립니다. 진정한 나를 알아채게 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아는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배우고 익혀 실천해야 할 것은 그 이후에도 훨씬 더 많습니다. 내가 나와 타자의 운명을 읽을 수 있게 된다고 해서 그것이 나를 신의 지위에 올려 주지는 않습니다. 공동체를 더욱 아름답고 살기 좋은 것으로 만드는데 기여하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타자의 운명을 훤히 해석하게 된다고 해서 타자의 운명을 단정하려는 신 노릇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주팔자에 담겨 있는 것은 한 인간의 운명적 보편성입니다. 같은 사주를 타고난 사람들은 동일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범주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명리학적 깨달음을 얻고 난 우리가 상담에 임할 때는 한 사람의 사주에서 읽히는 운명의 보편성 안에서 인간대인간의 진솔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그만의 특수성에 해당하는 문제를 듣고 그에 대해 최선의 해결책을 조언해야 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인간의 운명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운명에서 보편성이 아니라 절대성을 보는 사람은 운명이라는 굴레에 스스로 갇혀 있는 것입니다. 그 무엇도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만일 절대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인지 능력 밖의 것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상대적인 세계에서 상대적인 경험을 하고 상대적인 지식을 쌓으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는 시간조차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공간의 차이로 인해 우리에게는 상대적인 것입니다.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운명의 설계자가 원하는 것은 상대적 운명을 부여 받은 인간들이 자신의 운명의 보편성 안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써 나가는 것임을 말입니다. 저는 그것을 운명의 여백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명리학 공부를 통해 자신이 채워야 할 여백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이 책을 통해 명리학을 배우고자 하는 독자 여러분은 진정한 명리학 공부의 단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명리학적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명쾌한 명리학이 얼마나 실천적인 해답을 주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험이든 지식이든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입장이 될 때 우리는 니체의 말을 떠올려야 합니다. “영원히 제자로만 머문다면 그것은 선생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쓰고 있는 월계관을 낚아채려 하지 않는가?” 선생은 학생들이 자기를 뛰어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자신의 가르침에 진심을 다할 때 가르치는 자로서의 자격을 갖게 될 것입니다. 배움의 여정을 함께하고 있는 벗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 모두가 바로 서로에게 친구이자 스승입니다. “스승이면서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다. 친구이면서 배울 게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라는 이탁오의 말을 우리는 늘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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