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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모189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문을 배웠으며 10세 때 수하동소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했다. 1905년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서울 연동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1910년 남강(南岡) 이승훈(李昇薰)의 초빙으로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교사로 2년간 봉직하기도 했다. 22세 때인 1912년 일본 도쿄로 유학을 갔다가 재일본 YMCA에서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귀국해 24세 때인 1914년부터 최남선(崔南善)과 가까이 지내면서 잡지 『청춘』에 여러 편의 글을 기고했다. 1919년에는 이승훈으로부터 3·1운동 거사 자금을 맡아 아버지가 운영하던 경성피혁 상점에 보관하다가 아버지 류명근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1년 조만식(曺晩植) 후임으로 정주 오산학교 교장으로 부임해 1년간 재직했으며, 이때 제자 함석헌(咸錫憲)을 만나 사제지간이 되었다. 1928년 중앙YMCA 간사 현동완(玄東完)의 요청으로 YMCA 연경반 모임을 1963년까지 지도했다. 1941년 예수 정신을 신앙의 기조로 삼기 시작했으며, 일일일식(一日一食)을 몸소 실천했다. 1942년 ‘성서조선 사건’으로 일제 치하 종로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1943년 2월 5일, 북악 산마루에서 천지인(天地人) 합일의 경험을 했으며, 1956년 4월 26일에는 죽는다는 사망 가정일을 선포하고 그날부터 ‘다석일지’(多夕日誌)를 쓰기 시작했다. 『노자』(1959)를 완역했으며 다수의 경전 주요 부분을 우리말로 옮겼다. 1981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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