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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령자는 자준, 호는 계암, 본관은 광산이다. 1577년 서울에서 태어나 1590년 고향인 예안의 오천으로 돌아온 뒤 줄곧 오천에서 지냈다. 어릴 때부터 학행이 뛰어나 15세(1591) 때 최연소의 나이로 도산서원 원생이 되었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으로 참여하였다. 1612년 문과에 급제하고, 1614년 승문원 권지정자로 관직에 올랐으나 벼슬에 오래 있지 않았다. 특히 인조 1년(1623) 사헌부 지평에 임명되어 상경하던 도중 낙마 사고를 당하였고, 이후 은일지사의 삶을 살았갔다. 조정에서는 관직을 높여 가며 그를 불렀으나 계소고 벼슬을 사양하였다. 당시 조정에서는 그를 '영남의 첫 번째 인물'이라 평하였다. 그는 고향 오천에 있으면서 사림으로서의 활동을 훌륭히 수행하였고, 그 삶의 기록이 '계암일록'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서로는 '계암선생문집'이 있다. ![]() ![]()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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