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작은 한 줄기 햇살도 들지 않는 어두운 통로에서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따듯한 부모님 품에서 떠나야 하는 운명으로 시작하여 중학생 때부터 막노동, 고학에 인생 초장에 쓰디쓴 맛을 겪으며 모진 고통을 온몸으로 마주하며 살아야 했다. 토마토를 훔쳐 먹고 깡통을 옆에 끼고 구걸하는 거지의 배고픈 절규는 웅변으로 달구어졌다. 세찬 바람에도 끄덕하지 않고 오직 살아야 하는 절박함과 성공 외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막다른 길목, 길었던 터널을 빠져나와 우뚝 서 있는 곳은 깡통 거지가 국회의원으로 변신 된 자리였다.
국회의원 등원부터 시작하여 국회 본회의장 앞 배지와 의원 배지, 의원 명패는 물론, 해외 142개 영·대사관, 국내 837개 공공기관 한자현판을 한글로 바꾸는 데 공을 세웠다. 또한 “한글날 재제정” 여주 “세종대왕릉역”이름 제정, 부산 “에코델타” 동 이름 제동, “세계최다문자 외워 쓰기 기록보유자”로 한글, 한국어 운동가의 몫을 했다.
또한 한글, 한국어 연구 학자로서 전, 과기처 한글표준전문위원으로 참여하여 1T 시대에 딱 맞는 컴퓨터 한글표준시안으로 세계 전산 행정서비스 1위에 오르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단법인 한국바른말연구원장”으로 『이것이 한글이다』(5판) 책을 냈고 최근에는 『이것이 한글이다. 보정판』 과 『이것이 훈민정음이다.』(훈민정음 해례본, 완전본) 출간을 준비하고 있어 한글박사 호칭답게 꾸준히 연구보급에 전념하며 평생을 바치고 있다.
덕분에 한글 유공자 대접으로 대통령 포상과 세종대학교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래서 TV, 라디오, 신문, 잡지 보도된 기사를 모아 600여 쪽으로 압축하여 『한글운동 60년사』 책을 냈다.
강원도 원주 깊은 산골짜기 귀래 백골 갈미봉 촌놈에서 벗어나 나라 안은 물론, 나라 밖 백여 개가 넘는 나라를 대상으로 간간이 순차, 순방 강연하는 국제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 대변인과 감사, 헌정-TV 방송 총괄본부장 등 수행한 인연으로 회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내가 평생 하는 한글, 한국어 운동에 다수 회원으로부터 적극 응원받고 있다.
이외 나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주신 고 정주영 회장님의 고마움을 못 잊어 ‘아산 정주영 기념사업회’를 창립, 회장으로서 ‘무에서 유 창조’ ‘도전 정신’을 젊은이들에게 계승, 전파 강연에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