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57분은 나에게, 고통스러운 꿈보다 현실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기 바로 직전의 시간으로 기억된다. 혼자만의 꿈에서 깨어나 타인들과 함께하는 현실의 기나긴 복도로 걸어가는 나를 본다. 그 복도의 끝에서 마주치는 것이 우리의 상처와 고통이라 할지라도, 나는 끝까지 걸어갈 것이다. 타인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내가 윤리적으로 실패했음을 스스로 목격하고, 스스로 그 사건을 증언할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완벽한 착각이며 오만이다. 다만 나는 타인이 나에게 전한 말을 영원히 기억함으로써 늘 그녀의 말을 내 안에 품을 것이다. 내 안의 시간은 매일 새벽 5시 57분에 멈춰 설 것이고, 나의 몸은 정지한 채로 그녀의 말을 해산(解産)할 것이다. 그 말이 법을 넘어선 진실에 가 닿을 때, 비로소 나는 타인의 고통과 근심에 귀 기울이고 그녀와 교감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비평은 새벽 5시 57분의 언어로서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