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의 묘비명
나는 ‘실패한 시인’이다. 그런 까닭에 시는 쉬지 않고 썼지만, 감히 발표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공주문화재단에서 “정직하게 살라”고 지적해 왔다. “실패했다면 실패한 그대로 보여 주라”는 것이다. 무서운 일이긴 하나, 감행하기로 하였다.
시는 마음의 춤이고 그림이며 노래와 다름이 아니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말하자면, 나의 시작詩作은 내 삶의 축제The Koo-Junghoe Festival 현장이었다.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기획하였는지 모르는 이상한 축제였다. 언젠가 이 축제도 결국 끝이 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다른 세상의 무엇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은 유고집으로 꾸며지길 바랐다. 그러나 재단의 충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대학 졸업 동기(나는 또 다른 입학 동기가 있다)인, 전남대학교에서 정년퇴직한 김준옥 교수에게 손질을 부탁했다. 작품 선정, 배치 등 편집을 전적으로 맡기기로 한 것이다. 고맙게도 선선히 응해 주었다. 그리하여 묘 안에서 묘 밖의 떠돌아다니는 내 작품의 편린을 미리 바라보게 되었다.
다음은 「허공 비문―무덤이 없을 테니까」이다.
내내 시인 흉내만 내면서,
시를 쓰다가 죽은 자여.
죽어서라도 시와 속살을 맞대고,
밤새워 질펀한 사랑을 나눌지어다.
해 질 녘에 금강이 바라보이는 서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