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억들은 망각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자라버린다. 한 사람의 인생을 뒤집어버리고 만 거짓말, 오랜 사랑에게 버림받았던 어느 밤, 서울역 한복판에서 어렸던 내가 나보다 더 어린 동생의 손을 놓쳤던 시간, 몹시 배고파 시장 빵집에서 빵을 훔쳤던 일, 나보다 먼저 떠날 줄 몰랐던 동생에게 악담을 늘어놓았던 그런 기억들……. 잊어버리고 싶고 잊어버려도 좋을 만한 기억들은 질기고도 질겼다.
아프게도 기억은 고통, 쓸쓸함 그리고 슬픔 같은 것들만 먹고 자라는 듯하다. 즐거운 기억들도, 행복한 순간들도 수없이 많았을 텐데 그런 기억들은 희미해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아프고 슬픈 기억들만 선명해졌다. 기억을 뒤져보면 깊은 곳 어딘가에 기뻤던 순간들도 자작하게 깔려있으련만 그런 기억들은 꽁꽁 숨어서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슬퍼하지 않는 건, 그런 기억들이 있기에 앞으론 슬퍼하거나 후회하지 않으려고 혼신을 다해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