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경북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과 『현대문학』 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그리운 우물』 『슬픔의 무궁한 빛깔』 『사랑의 저편』과 장편소설 『탑의 연가』 『최 회장댁 역사적 가을』 『염원의 밤』을 출간했다. 대구소설가협회장과 정화중·여자고등학교장을 역임했고, 〈대구문학상〉과 〈금복문화상〉을 수상했다.
어느덧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세월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 옛 어른들 말씀이 ‘세월이 살 같다’고 하셨는데, 요즘의 내가 그 말을 실감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게는 요즘이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행복하다. 늘 꿈꾸고 갈망하던 시간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내가 왜 작가의 길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기억컨대 내가 처음 소설이라고 써본 게 중3 때라고 생각되는데, 그때부터 그 마음이 한 번도 바뀌어본 적이 없다. 어느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승이 화두를 붙잡고 참선하는 것은 내 안에 부처가 있음을 깨닫기 위함이라 했는데, 어쩌면 내가 소설을 붙잡고 끙끙거리는 것은 내 안의 그 이유를 깨닫기 위함인지도 모를 일이다.
굳이 말하자면 내 문학의 원천은 고향 집 뒤꼍의 우물이다. 어느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고향 집 우물이 원고지라면 의봉산은 나의 붓이었다고. 이 자리에서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내 문학을 있게 한 자양분은 책도 도서관도 변변히 없던 어린 시절에 선친에게서 들었던 많은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일례로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자전거 훔쳐 탄 녀석’은 내 고향 마을 절골(寺谷)의 전설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해 쓴 것이고, 이 작품 말고도 알게 모르게 그런 영향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나는 작의를 매우 중시한다. 아무리 좋은 글감이라도 그것이 선명하지 않으면 섣불리 덤벼들지 않는다. 끙끙거려 봐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는 걸 경험상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소설집은 작의가 각각 다르지만 ‘슬픔’을 기본 정조로 한 단편들의 모음이다. 그래서 제목을 별도로 붙였다.
계획이 일 년 앞당겨졌다. 대구문화재단 덕분이다. 얼떨결에 신청한 공모 결과 발표를 보고 내 머릿속은 잠깐 복잡해졌다. 그러나 이내, 행운이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이유다.
지난여름 장편소설에 이어 이번 소설집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끝까지 배려해 주신 이영철 청어출판사 대표님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드린다.
2019년 늦가을
이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