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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램지 마이클스 (J. Ramsey Micha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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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NICNT 요한복음>

램지 마이클스(J. Ramsey Michaels)

수년 동안 고든-콘웰 신학교와 사우스웨스트 미주리 주립대학교에서 신약을 가르쳤고, 지금도 포틀랜드에 있는 방골 신학교의 비상근 교수로 그리고 풀러 신학교의 방문 교수로 가르치고 있다. 그가 쓴 요한복음 주석이 저명한 요한신학 전문가 레온 모리스의 NICNT 시리즈 요한복음 주석을 대체할 정도로, 램지 마이클스는 요한복음 연구에서 인정받는 학자다. 지은 책으로는 NICNT 시리즈의 『요한복음』뿐 아니라, IVP 신약 주석 시리즈의 『요한계시록』, WBC 시리즈의 『베드로전서』 등 여러 주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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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NICNT 요한복음> - 2022년 12월  더보기

NICNT에 기고하게 되어 기쁘다. 이 시리즈의 초대 편집장이었던 네드 스톤하우스는 1950년대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1년 동안 멘토였으며, 현 편집장인 고든 피는 1970-80년대 10년 동안 고든콘웰 신학교에서 동료였다. 이 주석은 어느 정도는 첫 번째 시도(1984, 1989)를 기초로 둔 두 번째 시도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본문을 훨씬 상세히 주해하고자 했다. 내가 친구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제대로 할 때까지 계속 시도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모험심이 가진 매력은 사람이 절대로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게다가,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요한복음에 대해 책을 썼던 사람들의 높은 치사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에드윈 호스킨스의 주석은 데이비가, 라이트풋의 주석은 에번스가, 샌더스의 주석은 매스틴이, 에른스트 핸헨의 주석은 로버트 펑크와 울리히 부세가 마무리하고 편집했다. 그래도 도드가 위안이 된다. 도드는 요한복음에 대해 처음으로 썼던 위대한 책, 『요한복음 해석』을 예순아홉이었던 1953년에 완성했으며, 두 번째 책인 『요한복음에서의 역사적 전승』을 10년이 지난 후에 완성했다. 처음부터 이 주석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아는 것이 독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17년 전 어드만스 출판사와 처음으로 계약서에 서명한 이후 요한복음에 대해 나온 모든 책을 검토한 것은 아니다(심지어 그 이전에 나온 책도 일부 놓쳤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나는 본문 자체에 몰두하려 했다. 반면에, (거의 최고의 위치에 있는) 불트만, 슈나켄부르크, 브라운, 배럿 같은 시대를 초월하는 주요 주석가와 소통하는 외에, NICNT 시리즈 전임자 레온 모리스, 웨스트콧, 호스킨스, 린다스, 링컨, 카슨, 비즐리머리, 키너, 멀로니, 젊은 시절의 나까지 무수한 저술을 참고했다. 이 이름은 계속 늘어날 것 같다. 뜻밖에 나는 여러 좋지 않은 이유로 널리 칭송을 받는 루돌프 불트만의 주석이 무엇보다 가장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트만의 자료, 편집, 전위(轉位) 이론은 살아남지 못했으며, 살아남아서도 안 된다. 그렇지만 세세한 것에 대한 불트만의 안목은 비길 데가 없으며, 본문을 있는 그대로 꼼꼼하게 읽는 것은 심지어 불트만이 해당 본문을 버릴 때마저 직관과 깨달음을 준다. 불트만이 요한복음을 (어느 정도) 바르게 해석했지만, 요한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해서 문제를 수정했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지나친 단순화에 불과하다. 불트만의 위대함은 요한복음의 문제를 찾아내서 이를 수정했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을 바르게 해석했다는 점에 있다. 관련 정기간행물도 꽤 다루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망라한 참고문헌 같은 것이라면 다른 곳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키너의 책에 있는 167쪽 분량의 참고문헌이 시작하기에 좋은 최신의 자료다. 둘째, 나는 유대교, 헬레니즘, 헬레니즘 유대교, 쿰란, 영지주의든 뭐든 요한복음의 “배경”(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든)에 시간을 많이 쓰지 않았다. 요한복음에 대해서는 배경 설명에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이 관례지만, 다른 세 복음서에 대해 그러지 않는 것은 요한복음에 나머지 복음서들과 공유하지 않는 독특한 “배경”이 어느 정도 있다는 가정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내가 확신을 갖는 것은 다른 복음서처럼 요한복음도 그 배경이 혼합되어 있다는 점이고, 요한복음의 주요 구성 요소는 유대 경전, (팔레스타인과 헬레니즘의) 제2성전 유대교, 원시 기독교라는 점이며, 해석가는 영지주의에도 유사한 요소가 (전경으로든 배경으로든) 존재함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내 생각에는 “배경”에 대해서는 일반론보다는 구체적인 본문과 관련하여 평가하는 것이 더 낫다. 셋째, 그래서 나는 적어도 이 주석서 전체의 규모에 비해 서론을 상대적으로 짧게 썼다. 요한복음의 역사적・문화적 배경뿐만 아니라, 요한복음의 자료 사용, 다른 복음서 및 신약 문서와의 관계, 요한복음의 문학 양식, 요한복음의 기독론과 신학 등 이 모든 논제는 심지어 요한복음을 읽기도 전에 책의 서두에서 다루기보다는 이들 전체 논제와 관련된 본문과 연결하여 거론할 때 다루기가 더 쉽고 좋다. 레온 모리스의 서론은 거의 60쪽이고, 레이먼드 브라운의 서론은 100쪽을 훨씬 넘으며, 배럿의 서론은 거의 150쪽, 슈나켄부르크의 서론은 200쪽을 조금 넘으며, 크레이그 키너의 서론은 330쪽에 달한다! 그렇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불트만의 독일어 주석에는 서론이 전혀 없고, 발터 슈미탈스가 1971년에 영어권 독자를 위해 서론을 추가했을 때, 그것은 12쪽 분량이었다. 따라서 나는 대체로 저작성 문제를 중심으로 다룬 서론이 비교적 짧은 것에 대해 변명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소위 “서론”이란 것이 본문 주석 앞이 아니라, 뒤에 와야 하는 건 아닌지 언제나 고민했다. 나는 서론을 제일 마지막에 썼다. 그래서 서론을 읽는 것도 마지막에 읽는다면, 그것도 나쁜 생각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요한복음 본문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를 추적하기보다, 요한복음 본문이 우리에게 전해진 그대로 현존 형태 안에서 본문을 이해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요한복음 자료는 그것이 다른 복음서 한두 개든, 그 이면에 있는 구두 전승이든, 아니면 추측상의 “이적 자료”든, “계시 강화”든 부수적 관심사며, 간혹 각주에서 다룰 뿐이다. 말하자면 과거의 자료에서 취해진 후 복음서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어떤 것이 복음서 기자가 복음서에 가한 편집 작업에 비하면 반드시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오늘날 흔히 하는 말로, 여기서 취한 접근은 통시적이 아니라, 공시적이다. 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요한복음이 일관된 문학 작품이라고 생각해 왔으며, 요한복음을 일관된 것으로서 읽고자 시도했다.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독자에게 일관성을 전제로 읽는데 추정되는 어려움에 대해 주의를 줄 때도 그러했다. 나는 간혹 “요한복음에는 예수가 정말로 한 말이 나오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내 대답은, 이 주석에서 명백히 드러나게 될 것이지만, 다음과 같다. “아마도 그렇다. 그러나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자주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결론을 내릴 때, 주석가로서 할 일은 그런 말씀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다.” NIV(TNIV) 번역이나 사역(私譯) 중에 선택할 수 있어서 사역을 싣기로 결정했다. 기존 번역 성경의 특징을 놓고 변호하거나 논쟁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제시한 사역은 일부러 직역으로 정했다. 이렇게 해야 헬라어를 모르는 독자도 원문의 구조와 구문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역한 본문은 그대로 자족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두어도 안 될 것이다. 본문과 관련하여, 나는 전반적으로 네스틀레-알란트판 헬라어 신약 성경 26판과 27판을 따랐다. 네스틀레-알란트판을 따르지 않은 경우(예, 1:15; 12:17) 간혹 무척 길더라도 그 이유를 제시했다. 두 번째 시도인 이 주석은 대부분 은퇴 기간에 준비했다. 하지만 이것은 고든 신학교, 고든콘웰 신학교, 앤도버 뉴턴 신학교, 미주리 주립 대학교, 은퇴 후 파사데나와 시애틀의 풀러 신학교와 메인주 포틀랜드의 뱅거 신학교 등의 교실에서 있었던 반세기에 걸친 가르침의 산물이다. 내가 가르쳤지만,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이 모든 곳의 학생들에게 감사한다. 그중 세 분인 벤 위더링턴(1995), 로드 휘태커(1999), 크레이그 키너(2003)는 요한복음에 대해 탁월한 주석을 썼다. 그레이스 신학교 교수였다 후에 학장까지 지낸 호머 켄트 역시 요한복음에 대해 훌륭한 주석을 썼다(Light in the Darkness: Studies in the Gospel of John). 켄트 교수가 1953년 봄 수업 중에 요한복음을 소개한 것이 기억난다. 이 분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켄트 교수의 강의는 구성도 매우 좋았지만, 내 기억에 최고로 남는 것은 우리에게 (한 문제당 한 장씩) 숙제로 내 준 21개의 “논란이 되는 본문”이었다. 내겐 바로 이것이 출발점이 되고 웨스트콧의 주석과 메릴 테니의 책(John: The Gospel of Belief)도 도움이 되었다. 최근에, 고든콘웰의 고든 피(현재 이 책의 편집장), 미주리 주립 대학교의 찰리 헨드릭, 풀러 신학교의 고(故) 데이비드 숄러를 포함한 동료들과의 교제를 통해 유익을 얻었다. 더 최근, 그러니까 이 책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작은 규모의 미국 침례교회 소속 예닐곱 분(이 중에는 나의 목사님도 계신다)으로 이루어진 뉴햄프셔 성직자 후원 그룹에서 격려를 많이 받았다. 우리는 대개 사례 연구를 함께했다. 이것을 통해 나는 대형 교회의 궤도 밖에서 시골 소도시 목사가 무엇을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들의 기도에 감사한다. 나는 이 주석이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를 바란다. 그들이야말로 내가 이 주석을 쓰는 대상인 바로 그 청중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 아내 베티도 있다. 베티는 내가 처음 요한복음을 알게 되었던 1953년 봄 이래로 늘 나를 사랑해 주었고, 나도 그녀를 사랑한다. 나의 사랑 베티에게 이 책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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