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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박학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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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해체와 연속, 근현대 한국의 유학사상>

박학래

군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저서로 『奇正鎭 哲學思想 硏究』, 『한말 성리학의 거유 기정진』, 『(학문과 충절이 어우러진) 영천 지산 조호익 종가』, 『여헌 장현광 평전』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朝鮮 末期 畿湖學派의 栗谷 理氣論 계승과 분화」, 「蘆沙 奇正鎭의 性理說을 둘러싼 기호학계의 논쟁」, 「鳳棲 兪莘煥의 哲學思想 硏究」, 「臺山 金邁淳의 未發論 연구」, 「艮齋 田愚의 유학사적 위상과 그 영향」, 「淵齋學派의 형성과 전개」, 「勉菴 崔益鉉의 문인 집단 형성과 전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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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노사학파 문인들의 삶과 사유> - 2021년 6월  더보기

들어가며 ‘한국 근현대 유학의 특징적 면모 중 하나는 기호 학계와 영남 학계를 불문하고 19세기 중반부터 특정 학자를 중심으로 한 문인집단이 다수 형성되었고, 이 문인집단은 20세기를 관통하며 그 학맥을 지속하였다는 점이다. 유학의 영향력이 현저히 약화되는 시대 상황에서도 이른바 ‘한말(韓末) 도학파(道學派)’로 지칭되는 이 시기 유학자들은 각 학파의 종장(宗匠)을 중심으로 주자학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도모하는 한편, 전 시대의 주요 성리학적 쟁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특징적인 학설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성리와 의리의 일관 구조를 바탕으로 가중되어가는 대내외적 모순과 제국주의의 침탈에 맞서 유학적 질서를 유지하고 국가 체계를 수호하고자 하는 다양한 실천 지향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 시기 각 학파의 종장들과 이들 문하에서 배출된 문인들이 보여준 활동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지속적이면서도 폭넓게 펼친 강학 활동을 통해 각 학파의 외연을 확대하였다는 점이다. 각 학파의 종장들은 자신의 근거지를 중심으로 한 강학 활동 이외에 다른 지역의 학자들과 폭넓은 교유를 진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을 대상으로 한 유력(遊歷)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학문적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의 근거지 이외 지역에서 여러 문인을 자신의 문하로 이끌었다. 이렇게 배출된 문인들도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서 다양한 학문 활동을 전개하면서 자신들의 스승들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강학 활동을 펼치며 유학적 가치를 부지(扶持)하며 자신이 속한 학파의 면모를 유지하는 데 주력하였다. 19세기 중반 이후 다양한 학문 활동을 통해 전통 유학의 흐름을 지속하는 학문 활동이 지속되는 가운데 호남을 중심으로 그 학문적 외연을 강우(江右) 지역으로까지 확대한 대표적인 문인집단은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을 중심으로 한 ‘노사학파(蘆沙學派)’였다. 노사학파는 기정진 생전에 이미 강우 지역에서 다수의 문인을 배출하며 그 지역적 외연을 확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정진 사후에도 이 지역의 직전 제자들을 중심으로 폭넓은 강학 활동이 전개되어 지역적 외연을 보다 확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학맥도 20세기 후반까지 유지하였다. 특히 강우 지역에서는 노사학파의 중심을 이룬 주요 문인들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학문적 기반이 되는 노사학(蘆沙學)의 체계적인 정리, 그리고 이를 기초로 한 노사학의 확산이 폭넓게 이루어졌다. 퇴계 계열의 영남 학맥뿐만 아니라 율곡을 연원으로 하는 기호 학맥으로부터 연원하는 다양한 학파의 문인들이 착종하고 있었던 당시 강우 지역에서 노사학이 호남 지역에 비견될 정도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본고에서 고찰하는 정재규(鄭載圭, 1843~1911)를 비롯하여 강우 지역을 배경으로 성장한 노사학파의 핵심 문인들이 폭넓은 강학 활동과 타 학파 학자들과의 교유, 그리고 실천지향적 면모를 다각도로 펼쳤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본고에서 고찰하는 정재규는 기정진 생전에 이미 노사학파 내에서 학문적 역량을 인정받아 김석구(金錫龜, 1835~1885), 정의림(鄭義林, 1845~1910)과 더불어 ‘노문삼자(蘆門三子)’로 일컬어질 정도로 탁월한 학문적 성취를 이룬 문인이었다. 그리고 기정진 사후에는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을 비롯한 노사학파 핵심 문인들과 함께 『노사집(蘆沙集)』 간행을 비롯하여 학파 내의 주요 사안을 펼쳐나가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강우 지역 내에서 활발한 학문 활동을 전개하고 있던 한주학파(寒洲學派), 성재학파(性齋學派) 문인들을 비롯하여, 기호 학계의 중심을 이루고 있던 화서학파(華西學派), 연재학파(淵齋學派) 등의 주요 인물들과 지속적으로 교유하며 학문적 영향력을 강화하였다. 특히 그는 기정진 사후에 본격화하는 노사학파 내부의 주요 강회를 통해 노사학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와 계승을 주도하였다. 영호남을 넘나들며 펼쳐진 그의 강학 활동은 노사학파 문인들의 학문적 결집 및 일체감 조성에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정진 학맥의 지속적인 계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아울러 그는 노사학에 대한 계승뿐만 아니라 기정진이 보여준 실천 지향적 면모를 이어받아 20세기 초반의 실천적인 의병 활동을 비롯하여 다각적인 실천적 면모를 보여 학문과 실천 양면에서 노사학파의 중심이라는 평가를 도출하기에 충분한 위상과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렇듯 기정진 사후에 노사학파 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정재규의 학문 활동과 학문적 입장에 대해 그동안 학계의 관심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구체화되어 왔다. 1998년에 열린 한국동양철학회 학술대회를 통해 정재규에 대한 첫 개별 연구 논문이 제출된 이후, 단속적이지만 정재규의 학문 활동에 대한 연구 논문이 지속적으로 제출되었다. 특히 2010년부터 경상대 남명학연구소가 주최한 강우 지역의 학문과 관련한 학술대회를 통해 정재규에 관한 연구 논문들이 다수 발표되었으며, 최근에는 정재규에 대한 첫 박사학위 논문도 제출되는 등 노사학파 문인들에 관한 연구가 아직 소략한 학계의 현실을 감안할 때, 정재규의 학문과 사상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재규에 대한 일련의 연구 논문에서 여러 연구자들이 비중 있게 검토한 것 중 하나는 그의 강학 활동이었다. 정재규는 노사학파 전체 문인 가운데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문인 중 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강우 지역 내 문인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속적인 교육활동을 통해 어느 누구보다 많은 문인을 배출하며 노사학을 강우 지역 내에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그의 강학 활동에 대해 연구자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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