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10기) 및 육군대학 정규과정과 국방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이후 강원대학 정경학부(학사)와 동국대 행정대학원(석사)을 거쳐 서울대 행정대학원(ACAD과정), 고려대 생명환경대학원, 경남대 북학대학원을 수료하였다.
국회 3선 의원(제11·12·14대)으로 당선되면서 국회 교통체신위원장, 국회농림수산위원장을 지냈고, 민정당, 민자당 중앙집행위원, 당무위원, 전부 도지부 위원장을 지냈으며, 국회 내무 보사 상공분과 예결위원을 지냈다. 어릴 때부터 국가에 대한 헌신을 다짐했던 저자는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한국전쟁 참전용사로서 1992년 6월 한국 베트남 교류 사절단장으로 당원 국회의원 3명, 당중앙위원 2명 등과 함께 베트남서기장 초청 메시지를 전달하였으며, 1993년에는 미국 워싱턴 주 한국전 참전기념비 제막식의 한국대표로 참석하기도 하였다. 또 우리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은 저자는 춘향문화 제전위원회 명예회장과 위원장을 지냈으며 새한전통예술보존회 초대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한일의원연맹 부위원장, 대한민국 헌정회 이사 안보특별 위원장, 부회장 및 위원 고문을 지냈고, 12대 국회의원 동우회 회장, 자유대한 수호국민운동포럼 상임대표, 한미연합사 해체 반대 1,000만인 서명운동본부 공동 대표 등을 역임하였다. 2011년 현재 재향군인회 원로자문위원, 국가 정체성 회복 국민협의회 중앙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1기(육사 10기)로 임관한지 벌써 61주년이 미구에 다가온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야기된 한국전쟁은 이 나라의 간성이 되고자 용약 육사에 입교한 262명에게서 꿈과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1949년 7월 육사생도 1기로 선발된 우리들은 푸른 하늘의 높은 기상과 고동치는 맥박을 진정시키며 육사에 입교, 1년간의 수업을 마치려는 즈음에 동족상잔의 전쟁에 무관의 병사로 참전하였다.
위난에 처한 조국을 구하고자한 심정이야 어느 누구보다도 강렬했지만, 당시로서는 최장기간의 장교양성과정을 거친 우수 집단이 그 보람도 없이 무관의 용사로 전선에 투입되었음은 하책(下策) 중의 하책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우수한 초급지휘관의 자질을 충분히 갖춘 사관생도를 한낱 병사로 참전 시킨 것은 국력의 낭비요 에너지의 탕진이었다. 이는 세계의 전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도 없는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당시 적의 전면적 공격 징후가 도처에 나타나고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첩보수집, 분석의 미숙 또는 상황판단의 잘못으로 대비를 소홀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장병을 각종 명목으로 전선을 이탈케 한 수뇌부의 무능무책을 탓하여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마는 나라가 어려울 때일수록 100년대계를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우리 육사생도 1기 262명과 입교한지 불과 25일밖에 안된 앳된 생도 2기 272명은 혼성으로 생도 대대를 편성, 6월 25일 오후 포천지구 부평리로 출동하였다. 26일부터 치르게 된 부평리전투, 태릉전투, 금곡리전투, 그리고 수원방위전투를 거쳤다. 7월 10일, 대전 도청에 임시로 자리 잡은 육본의 광장에서 생도 1기생은 임관 및 졸업식을 가졌으며 형제지애로 함께 전선을 누비던 생도 2기생들은 계속되는 교육을 받기 위해 헤어져야만 했다. 임관식이라지만 134명만 집결하였고 여타는 전사하였거나 병원에 입원중이거나 불암산 유격대로 돌아갔거나 했다.
임관 사령장이나 졸업장은 대표 1명에게만 수여되었고 깡통으로 급조한 조잡한 계급장에다 단도 한 자루가 수여되는 졸업식이었다. 대표생도를 비롯하여 생도 2기생은 물론 모든 졸업생들이 눈물을 쏟아내었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졸업 및 입관식이었지만 1기 생도들의 눈빛은 살아있었고 적개심은 강렬하였다.
하지만 공산군에 비하면 턱없이 빈약한 무기, 열악한 보급, 부족한 탄약, 연결 상태가 불량한 통신과 지휘체계의 심한 요동이 사기를 저하시켰다. 포병의 수도 부족했으며 한 대의 전차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극한의 상황에서도 생도들은 붉은 가슴을 품은 채 목숨을 걸고 끝까지 조국을 위해 싸웠다. 아무리 세월이 무심하다 하여도 육사생도 1, 2기가 빚어낸 애국충혼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된다.
전쟁에서 일어난 갖가지 비극적인 일들로 1기생 65명과 2기생 86명은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 그 뒤 생도 1기생들은 임관 후 각 전선에서 55명의 전사자를 더 보태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6월 25일부터 7월 10일까지의 상황만 기록하였으며 그 뒤 상황은 생략하였다.
나는 전쟁에서 일어난 여러 비극적인 일과 각 개인의 분전 상을 생생하고 낱낱이 기록하고, 이를 소상히 밝히기 위해 감히 붓을 들었다. 태릉에서 피어난 ‘불멸의 무궁화’들의 혈투는 신라화랑들의 재현이요, 황산벌에 산화한 백제 용사들의 애국혼이요, 황량한 요동벌과 청천강에 불사른 고구려 용사들의 기상이며 이순신 장군의 애국사상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한몸을 불사른 동기생들의 넋 앞에 머리 숙여 이 책을 바친다. 더불어 이 책을 내는 데 있어 많은 조언과 자료를 제공하는 등 협력을 아끼지 않으신 김혜니 문학박사와 호승희 교수 두 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