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큐비즘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세상의 모습을 큐비즘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일찍이 세상의 가장 밑바닥 유녀 코우시가 그것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내다보았던 우리들의 민낯. 그것이 나의 모습이었다. 큐비즘적 양성의 덫에 갇혀 버린 나의 모습이었다. 세상을 사랑한다고 해도 거짓말이고, 침묵한다고 해도 배(背)하므로 거짓말이다.
오늘도 그 추상성에 할 말을 잃는다. 보이는 대로만 보는 우리의 시각, 그러나 그게 본질은 아니다.
아니라고 하는 그것, 그것도 거짓말이다.
본질은 그 뒤에 있다. 대답하지 못하는 침묵 뒤에 있다.
그렇다면 침묵의 모가지를 쳐 없애야 한다.
그때 대답이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 모습이 소설이다.
코우시, 코우시, 너는 언제 사람 될래?
사람이 되기 위한 밑바닥 인생의 몸부림 속에서 나는 보고 싶었다. 절망에서 일어나는 희망의 모습을.
생사의 엄청난 너울 속을 살아가는 우주의 큐비즘.
이런 작업이 한동안은 계속되지 싶다.
그러면서 천천히 우주의 정원을 산책하는 것. 그것이 남은 내 인생의 일과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