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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하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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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다섯 편의 영화, 다섯 가지 시대의 딜레마>

하미나

연세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하여 모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영국 낭만주의 영시를 전공하고 John Keats로 학위논문을 썼다. 연세대학교에서 1986년부터 1995년까지 교양과목을 강의했고 1996년부터 2024년까지 경찰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인문학과 시사영어, 대학심화영어를 가르쳤다. 현재는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인문학 교양서인 『영화로 보는 미술, 영화로 듣는 음악』, 『52편의 영화로 읽는 세계 문명사』, 미국에서의 실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쓴 『리얼라이프 미국 생활영어』, 『리얼라이프 경찰영어』, 수업교재로 저술한 『Film as Cultural History』, 『12 Ted Talks and Current Issues』, 『12 Critical Global Issues』, 『Advanced College English』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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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다섯 편의 영화, 다섯 가지 시대의 딜레마> - 2026년 9월  더보기

오늘날 인류는 거대한 ‘미래 충격’을 마주하고 있다. 무한 경쟁과 각자도생의 신자유주의 질서는 공동체 의식을 해체하고 있으며, 기술 발전에 도취된 인간의 오만은 생명 윤리와 지구의 지속 가능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수천 년간 인류의 정신적 토대였던 종교와 전통적 가치들이 세속화와 개인주의로 약화되면서, 사회의 구심점마저 상실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AI가 등장하여 폭발적인 진화를 거듭하며 인간의 삶과 사회 구조를 근본부터 뒤흔들고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미래 충격 현상을 “너무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변화를 개인에게 가함으로써 유발되는 파괴적인 스트레스와 방향 상실”로 정의했다. 우리가 낯선 지리적 환경으로 이동하면서 겪는 ‘문화 충격’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면 해결될 수 있는 ‘공간적 현상’이나, ‘미래 충격’은 사회 변화의 가속화가 낳은 ‘시간적 현상’이다. 사회 전체가 갑작스레 미래로 진입하면서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익숙하고 안정적인 삶의 방식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인류가 동굴에서 거주하던 수렵채집 시절은 변화가 거의 없는 정지 상태에 가까웠고, 제1의 물결인 농업혁명기에도 변화의 곡선은 매우 완만했다. 그러나 제2의 물결인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변화가 가속화하기 시작하여, 제3의 물결인 정보기술(IT) 혁명에 이르러서는 폭발적인 수직 상승을 기록하며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가했다. 그리고 이제 AI가 주도하는 제4의 물결로 접어들어, 인류는 차원을 달리하는 변화 앞에서 고유의 가치와 정체성까지 위협받고 있다. 젊은 세대는 적응은 빠르나 디지털 격차에 따른 기회 불평등과 고용 불안 등 새로운 형태의 충격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방향을 잃어가고 있고, 기성세대는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삶을 지탱해주었던 오랜 지식과 경험들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고립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인류가 지금까지 겪어온 격변들은 그 엄청난 충격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구조와 가치관을 재정비할 시간적 여유를 허용했다. 그러나 AI의 기하급수적 진화는 인간의 인지적 · 생물학적 적응 속도를 압도적으로 앞지르고 있다. 이전의 충격들이 새로운 기술이나 체제로 세상을 재편하는 과정이었다면, AI 시대의 충격은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고 있는 인공지능 앞에서 과연 인류가 자신의 삶과 세상의 주체로 존속할 수 있는가’라는 실존의 위기를 불러일으킨다. 이제 인류는 현대 사회가 안고 있던 기존의 딜레마를 넘어, 이미 삶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은 AI와도 공존해야 하는 전대미문의 과제에 직면해 있다. AI는 알고리즘이나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었으나, 최근에는 제미나이나 챗GPT 같은 생성형 AI의 전면적 등장으로 그 파급력이 증폭되고 있다. 이들 생성형 AI는 대화 형식으로 손쉽게 지식을 알려주고 창작과 코딩 작업까지 수행하며, 과거 그 어떤 기술보다 친숙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직관적인 사용 방식 뒤에 숨은 작동 원리는 일반인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변혁의 속도 또한 파괴적이어서, 사회 전체에 심리적 과부하를 초래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AI가 인간의 지적 · 물리적 노동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며 전 지구적 고용 위기를 촉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학습과 추론을 넘어 자율적인 실행 능력까지 갖춘 에이전트 AI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술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극소수는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반면 대다수는 그 팽창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집단 소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AI가 인간의 모든 지식과 가치를 압도하는 것은 아니다. AI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지능을 인위적으로 ‘모방한’ 것으로, 논리적 연산이나 추론 등의 정량적 영역에서는 인간을 능가하지만 신체적 경험이나 감정, 물질과 교감하며 느끼는 ‘물성’(物性) 등의 정성적 영역에서는 명백한 한계를 지닌다. 인간의 지능은 단순히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연산 작용에 머물지 않고 온몸의 신경망과 신체 세포가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형성되는 ‘체화된’ 인지 능력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비대칭성을 명쾌하게 설명한 것이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이 제시한 ‘모라벡의 역설’이다. 인간에게 어려운 고도의 연산은 AI에게 쉽고, 인간에게 너무나 쉬운 본능적 행동은 AI에게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는 태어나서 스스로 몸을 움직이며 자연스럽게 기고 서고 걷는 법을 체득하나, 휴머노이드 로봇이 한 걸음을 떼기 위해서는 엄청난 연산량과 정교한 제어 알고리즘이 투입되어야 한다. 또한 아이는 뜨거운 물체에 손을 데는 단 한 번의 경험으로도 즉각적인 학습을 이루어내지만, 로봇은 수많은 센서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을 거쳐야 한다. 모라벡은 이러한 차이의 원인을 ‘진화의 시간’에서 찾았다. 인류가 수억 년 동안 포식자를 피하고 지형을 읽으며 생존해온 감각이 뇌 속에 본능으로 각인되었기에, 인간은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고도 이를 수행한다. 반면 수학이나 체스 같은 논리적 추론은 인류 역사에 등장한 지 수천 년에 불과하여 인간에게는 고도의 학습이 필요하지만, AI에게는 단순 연산에 불과하다. 결국 AI가 주도하는 세상에서도 인류가 오랜 진화 과정이 부여한 신체성과 고유의 능력을 지켜낼 수 있다면, 미래 충격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AI가 기본값이 된 세상에서 기술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설계 초기 단계부터 인간을 우선해야 하며, 알고리즘을 도구로 활용하되 그 지배에 예속되지 않아야 한다. 아울러 오랜 세월 축적된 정신적 유산과 전통의 지혜를 인간의 품격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보존해 나가야 한다. 이 모든 과제보다 근본적인 것은 바로 인간 본연의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AI가 점유한 스크린 안의 가상 세계에서 벗어나 땅에 발을 딛고 서서 자연을 느끼고, 자신의 신체와 교감하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며, 생태계와 공생하는 삶의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본 책에서는 다섯 편의 영화를 통해 전통적 제도와 가치의 쇠퇴부터 자본과 기술 문명이 불러온 실존적 위기까지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딜레마들을 살펴본다. ≪두 교황≫에서는 서양 문명의 거대한 한 축이었던 교회가 현대 사회에서도 정신적 · 도덕적 기둥으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쇄신이 필요한지를 짚어본다. ≪더 퀸≫에서는 상징적 권위의 군주제가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도 존속하는 이유와 그 타당성을 고찰한다. ≪빅 쇼트≫에서는 탐욕에 사로잡힌 금융시장의 민낯과 ‘카지노 자본주의’가 사회에 미치는 폐해를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오펜하이머≫에서는 멈출 수 없는 과학의 진보가 사회 윤리와 상충할 때 과학자가 감당해야 하는 윤리적 책무와 실존적 고뇌를 조명한다. ≪가타카≫에서는 유전적 ‘부적격자’인 주인공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우주 비행을 꿈꾸고 실현하는 과정을 통해, 생물학적 결정론에 기반한 ‘구분 짓기’가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밝힌다. 이 다섯 편의 영화는 거대한 변혁의 물결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존재 의의를 어떻게 재정립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책의 표지와 본문에는 박신영 작가의 연작 중 일부를 수록했다. 작가는 작업 노트에서 “거울과 우주와 마음에서 자기 반사를 보고자 한다”라고 밝혔는데, 이러한 성찰이 투영된 작품들은 심오한 우주를 연상시키며 인류를 우주적 차원에서 조망했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엄격하고도 애정 어린 충고를 되새기게 한다. 칼 세이건은 지구가 광활한 우주 속 하나의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고, 인류 또한 그 속에서 찰나를 살아가는 미미한 존재임을 알려주었다. 그는 인류가 지속 가능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기술적 진보로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오만에서 벗어나 우주적 겸손을 갖추어야 하며, 하나의 종으로서 무의미한 분쟁과 차별을 멈추고 서로를 더욱 다정하게 대할 것을 호소했다. 이러한 우주적 차원의 성찰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굳건한 토대가 될 것이다. 책의 주제와 깊이 공명하는 작품들의 수록을 허락해주신 박신영 작가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26년 9월, 저자 하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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