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염증’이라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비로소 찾은 치유의 길
한의사이자 한 명의 환자로서, 제 삶의 길고 어두운 터널은 20대부터 시작된 발목 통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걸을 때만 아팠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술을 마신 다음 날이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날에도 통증이 나타났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발목이 먼저 반응했고, 걷지 않고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아팠습니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날에는 발목이 끊어질 듯 아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의사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한약, 약침, 도침, 추나, 매선, 운동치료, 대체의학, 민간요법 등 수많은 치료법을 배우기 위해 전국을 다니며 강의비로만 1억 원이 넘는 돈을 썼습니다. 배움을 거듭할수록 임상 실력은 좋아지고 치료 성과도 좋아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제 발목 하나는 제 손으로 완전히 고칠 수 없었습니다.
수개월 전부터 예약해야 할 정도로 유명한 정형외과 여러 곳을 찾아 진료도 받아보았지만, 수술을 권유할 뿐이었습니다. 유명한 한의사 원장님을 찾아 숙소까지 옮겨가며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추나와 각종 교정치료는 물론 해독요법을 포함한 온갖 민간요법까지 직접 경험해보았습니다. 이러한 치료들은 분명 통증을 줄이고 증상을 호전시켜 주었지만, 일상에서 발목을 의식하지 않을 정도의 완치 단계에는 좀처럼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공중보건의 시절 첨단한방병원에 입원하여 운동치료를 받으며 문형철 소장님과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후 문치연에서 공부하고 ‘건생병사’ 생태계에 참여하면서 질병을 바라보는 제 시야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던 발목 통증은 단순히 발목 관절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잘못된 식습관으로 인해 제 몸 전체에 만들어진 ‘만성염증’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이 본질을 깨닫고 난 후, 진료실 풍경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단순 염좌로 내원한 환자라 할지라도 심한 여드름이 있는 등 만성염증 상태가 의심된다면, 기존과는 다른 관점에서 치료의 방향을 새롭게 설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건생병사의 과제를 실천하며 ‘만나 절식’을 한 달 동안 직접 경험했습니다. 변화는 제 예상보다 컸습니다. 십여 년 동안 수많은 치료를 받아도 남아 있던 발목 통증이 크게 줄었고, 현재는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거의 느끼지 않을 정도로 회복되었습니다. 지금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웨이트 트레이닝과 달리기 같은 고강도 운동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건생병사를 실제 삶에서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지난 2년간 진료실에서 환자분들에게 건생병사 과제를 설명하고 설득하면서 그 어려움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환자뿐 아니라 이를 이끄는 의료인에게도 상당한 체력과 심리적 에너지가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래서 저부터 건생병사의 삶을 꾸준히 실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특히 저에게도 가장 어려웠던 과제인 운동을 평생 꾸준히 실천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말로만 건강을 이야기하는 의료인이 아니라 제가 먼저 실천해 보고 경험한 것을 환자에게 전하는 의료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책의 원고를 여러 번 읽고 다듬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과거 치료에 실패했던 환자분들, 마땅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돌려보내야 했던 분들, 그리고 결국 세상을 떠나신 환자분들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제가 진료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좀처럼 차도가 없는 환자분이 끝까지 저를 믿고 계속 진료실을 찾아오실 때였습니다. ‘지금의 내가 그분을 다시 진료할 수 있다면 어땠을까. 완치를 장담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다른 방향과 방법을 제시해 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더 일찍 알지 못했다는 부채감은 지금 만나는 환자들에게 제가 배운 것을 더 제대로 전해야겠다는 책임감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료 한의사 원장님들과 독자 여러분께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을 한 번 읽고 덮기보다 곁에 두고 여러 번 읽어보십시오.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졌던 내용들이 책을 반복해서 읽을수록 서로 연결되고, 어느 순간 실제 환자의 모습과 맞닿기 시작할 것입니다. 저 역시 이 책을 쓰면서 누구보다 많이 배우고 변화했습니다. 이 책이 낫지 않는 환자 앞에서 막막함을 느껴온 의료인에게는 새로운 시야를, 오랜 질병으로 지친 환자에게는 자신의 몸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더 많은 의료인과 환자분들이 함께한다면, 지금 치료의 방향을 찾지 못해 어둠 속을 헤매는 누군가에게 작은 빛을 건넬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 치유의 길을 여러분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끝으로 늘 아낌없이 가르쳐주시고 건생병사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는 문형철 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공중보건의 시절 운동치료를 배우며 시작된 인연은 제게 질병과 회복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었고, 임상가로서 다시 공부하고 성장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부족한 저의 경험과 깨달음을 담은 이 책이 그동안 받은 가르침과 감사에 대한 작은 보답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