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서는 마흔의 문턱에서 이십 대에 쓴 인생 각본이 폐기됐음을 인정해야 했던 사람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커리어, 처음 만나는 몸의 통증, 부모의 늙음과 또래의 부고가 한꺼번에 도착하던 계절에, 위로하는 책들은 가볍고 다그치는 책들은 버거웠다. 그때 만난 몽테뉴의 좌우명 — 크세주, 나는 무엇을 아는가 — 가 뜻밖의 처방이 됐다. 마침표들이 무너진 나이에는 물음표가 유일하게 정직한 문장이라는 것. 그는 몽테뉴의 가장 큰 매력을 '자기를 대단치 않게 여기면서 자기를 평생 탐구한 사람'이라는 모순에서 찾는다. 그 겸손과 집요함의 동거를 이 책의 문체로 삼으려 했고, 그래서 각 장은 결론이 아니라 시도(essai)로, 훈계가 아니라 안부로 쓰였다. 『마흔에 읽는 몽테뉴』는 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남의 답을 반납하게 하는 책, 덮고 나면 자기만의 뒷방 하나를 짓고 싶어지는 책을 목표로 했다. 인생의 오후를 지나는 사람들을 위한 다음 에세이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