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철학체계나 수행체계에서 상카라 또는 아디 상카라차리야는 중요하다. 32년이라는 길지 않은 생애 동안의 그의 위대한 삶은 실로 많은 업적을 남기고 떠났다.
그는 788년 케랄라(Kelala)의 칼라디(Kalady)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전 그의 부모는 자식이 없어 시바(Shiva) 신의 사원에서 매일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하루는 두 부부의 꿈에 시바 신이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는데, “평범하고 많은 아들을 두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모두 오래 살 수 있지만, 단 한 명의 아들을 원한다면 그는 모든 지혜는 다 가질 것이나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부부는 후자를 택하였고 그 후에 상카라가 태어났다고 한다. 상카라는 이미 어릴적부터 영리하고 기억력이 좋아 모든 경전을 독파하였다.
그는 8살부터 출가 수행자인 산야시가 되려고 하였으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출가 수행자인 산야시(Sanyasi)가 되는 것을 반대하고 결혼을 시키려 하였다. 어느날 상카라는 강가에서 목욕을 하다가 어머니가 보는 데서 뒤에 악어가 따라오는데 “산야시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면 악어에게 물려 죽겠다”고 하여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냈다.
상카라는 고대의 스승의 맥락이며 첫번째 스승인 나라야나(Narayana)와 브야사(Vyasa)와 슈크데바의 맥을 이은 가우다파다(Gaudapada)의 제자인 고빈다촤리야(Govindacharya)를 만나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인 아드바이타 베단타(Advaita Vedanta)의 가르침을 배웠으며, 스승은 그에게 위대한 경전인 브라흐마 수트라의 바스야 즉 주석을 달게 하였다. 그 후 상카라는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 기타에도 주석을 붙였다. 스승은 상카라에게 축복과 지혜를 주었으며 아촤리야의 칭호를 주어 상카라차리야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그 후에 인도의 성지인 바라나시로 가서 가르침을 펼쳤으며, 네 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되어 인도 전역의 동서남북에 상카라차리야 사원을 세웠다. 그 외에 그가 많이 머물렀던 남쪽의 칸치나 중앙 인디아의 쿨하푸르에도 상카라차리야 사원을 두었다. 그리고 10개의 다사나미(Dasanami)의 수행자 전통을 두었다. 출가수행자인 스와미(Swami)의 이름 뒤에 붙는 10개의 이름으로 그 전통을 잇게 하였다.
그는 불교에 밀려 명맥만을 유지하던 베다와 우파니샤드의 전통을 이었으며, 인도 여섯 수행체계인 사드 다르사한(Sad Darsahan)을 통하여 수행의 전통과 출세간의 가르침, 다양한 사상과 수행체계를 상카라차리야 전통으로 새롭게 정립하였다. 그가 주석한 10개의 핵심 우파니샤드와 브라흐마 수트라, 바가바드 기타 주석인 바스야를 하였다. 그 외에도 가르침의 설명서인 프라카라나 그란타(Prakarana Grantha)인 논문 형식인 비베카추다마니와 우파데샤사라와 5구절과 8구절 등의 다양한 잠언과 신들의 찬가인 스토트람(Stotram)과 프라판차사라와 사운다르야라하리인 전체적이며 종합적인 탄트라 경전들을 전체적으로 3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의 여러 저서들은 인도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사상사에 중요한 획을 그었으며, 그의 가르침은 다양하고 복잡한 인도의 사상과 가르침을 포용하고 단순화시켰다. 820년에 상카라는 히말라야의 케다라나트에서 마하사마디 즉, 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