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도록
시를 쓰기보다
시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산을 오를 때도
바다 앞에 설 때도
도시의 하루를 건널 때도
세상은 늘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나는 다만
그 곁에 서 있었을 뿐이다.
어떤 순간은 한 편의 시가 되었고
어떤 순간은
끝내 시가 되지 못한 채
몸에 남았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은
나를 시의 바다로 데려갔다.
이 시집은
잘 쓴 말들의 모음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았던 순간들,
지나오며 숨을 고르던 자리들에 대한
기억의 기록이다.
내가 바라본 모든 세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였다.
그 시들 앞에
이제
겸손의 책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