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9월 11일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마산리(현 청주시)에서 5남 4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그는 내수초등학교, 청주중학교,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성실함과 책임감을 키웠다.
1970년 육군에 입대하여 논산훈련소와 광주 포병학교를 거쳐 제32보병사단과 한미 제1군단 포병부대에서 복무했다. 당시 군에서 사용하던 최첨단 무기인 8인치 자주포 영어 교범을 우리나라 최초로 한글로 번역하여 교범을 발간함으로써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실무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는 군 전력 향상과 장병 교육에 크게 기여한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1975년 서울특별시 지방행정공무원으로 임용된 이후 동대문구청, 중구보건소,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특별시청 등에서 25년간 근무하며 시민을 위한 행정을 실천하였다. 언제나 청렴과 봉사를 공직자의 첫 번째 가치로 삼았으며 맡은 자리마다 책임과 신뢰를 바탕으로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였다.
1976년, 교육의 기회를 놓친 청소년과 어려운 환경의 성인들을 위해 상록야학을 설립하였다. 낮에는 공직자로 일하고 밤에는 교단에 서며, 학비조차 마련하기 어려웠던 이웃들에게 무료로 공부를 가르쳤다. 수많은 제자들이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며 대학에 진학했고 사회의 든든한 일꾼으로 성장하였다.
그는 늘 말했다. “배움은 사람을 살리고, 사람은 세상을 바꾼다.” 이 신념은 평생 그의 삶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었다. 공직과 교육봉사라는 두 길을 함께 걸으며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
그의 헌신은 사회로부터도 높이 평가받았다. 1977년 서울특별시장 모범공무원 표창을 시작으로 1982년 서울특별시 유공공무원 표창과 서울특별시 교육감상을 수상하였으며 1993년에는 시민을 위한 봉사정신을 인정받아 청룡봉사상을 수상하였다. 1997년에는 모교인 청주고등학교 총동문회가 선정한 제1회 자랑스러운 청고인상을 수상하며 지역사회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로 인정받았다.
그는 평생 명예보다 책임을 먼저 생각했고 성공보다 사람을 먼저 사랑했으며, 경쟁보다 나눔을 실천하였다. 공직자는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고 교육자는 사람을 키워야 하며 봉사자는 조건 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삶에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퇴직 이후에도 배움과 봉사의 가치를 전하며 후학을 격려하고,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삶으로 이렇게 증명해 왔다.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교육은 한 가정을 바꾸고, 한 가정을 변화시키는 사랑은 결국 사회를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