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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자가 희백(希白)이고 전당(錢塘 : 지금의 저장성 항저우) 사람으로, 오대십국(五代十國) 오월(吳越)의 개국 군주 무숙왕(武肅王) 전유(錢?)의 손자이자 제4대 충손왕(忠遜王) 전종(錢倧)의 아들이다. 오월의 마지막 군주이자 그의 숙부인 충의왕(忠懿王) 전숙(錢?)이 송나라에 귀순할 때 형 전곤(錢昆)과 함께 송나라로 들어갔다. 전역은 17세에 진사에 응시해 전시(殿試)에서 세 편의 문장을 반나절 만에 완성했는데, 주고관은 그가 재주는 뛰어나지만 경솔한 것을 싫어해서 낙방시켰다. 하지만 이때부터 전역은 문재(文才)로 이름이 알려졌다. 진종(眞宗) 함평(咸平) 2년(999)에 진사에 급제해 호주단련추관(濠州團練推官)에 보임되었다. 얼마 후 입조해 시중서사인(試中書舍人)에 제수되었다가 광록시승(光祿寺丞)·통판기주(通判?州)로 전임되었다. 경덕(景德) 3년(1006)에 현량방정과(賢良方正科)에 급제해 비서승(秘書丞)·통판신주(通判信州)에 제수되었다. 대중상부(大中祥符) 연간(1008∼1016)에 진종이 동쪽 태산(泰山)에서 봉선(封禪)할 때 《수상록(殊祥錄)》을 지어 바쳤으며, 서쪽 분음(汾陰)에서 제사 지내고 박주(?州)로 행차할 때 칙명을 받아 《거가소과도경(車駕所過圖經)》을 수찬하고 《송아(宋雅)》를 지어 바쳐, 태상박사(太常博士)·탁지원외랑(度支員外郞)·직집현원(直集賢院)·지개봉현(知開封縣)·상서사부원외랑(尙書祠部員外郞)을 역임했다. 그 후로 여러 벼슬을 거쳐 좌사낭중(左司郞中)으로 승진하고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었는데, 연일 숙직을 서다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인종(仁宗) 천성(天聖) 4년(1026)에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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