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4월 함경남도 흥남에서 출생,
6.25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해인 1950년 12월, 연합군의 <흥남 철수 작전> 때 일곱 살의 어린 나이로 부모님을 따라 흥남 부두에서 미국상선을 타고 남한의 거제도로 피란을 갔다.
미군용 대형 천막으로 허허벌판에 급히 세워진 거제도의 피란민 수용소. 겨울철, 추운 그곳에서 바닥에 가마니 등을 깔고, 먹을 것, 입을 것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나, 약품 등이 전연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폐렴 증세를 보인 아버지가 약 한 첩 못 써보고 돌아가셨고, 몇 달 후, 피란민 수용소를 떠나 살게 된, 연초리 냇가의 풀과 나무와 판자와 흙벽돌로 지어진 작은 움막집에서 여동생 선옥이 다른 많은 피란민 어린이들과 함께 뇌염에 걸려 죽었다.
이후,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옷과 통조림 등을 치마 속에 감춰 입거나 들고, 멀리 부산 등지로 가서 행상을 하는 어머니와 단둘이 어렵게 살고 있다가 1953년 7월 27일, 남북 간 휴전 협정이 이루어져서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중동고등학교 2학년 말기 때인 1961년 2월 10일, 전국 자립경제 추진위원회 주최의 전국 고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자립경제 건설 방안 논문 모집>에서 <자립경제를 위한 생활 태도의 개선>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고등부 최우수상 (부흥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1966년 7월 23일, 육군에서 병장으로 만기 제대, 1966년 10월 9일, 총무처에서 실시한 5급 을류(현 9급에 해당) 운수직 국가 공무원 공개 경쟁 채용시험에 합격하여 철도청, 충청북도 제천역 전철원으로 발령이 나서 1967년 1월 6일부터 철도청 소속 공무원이 되었다.
1978년, 중앙선의 능내역 역장 재직 시 대한적십자사의 <이산 가족 수기 모집>에 <차례상 앞의 눈물>을 응모, 가작으로 입선되었고, 이 <차례상 앞의 눈물>은 kBS에서 20분짜리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여 동년 8월 12일, 방영하였다.
2001년 6월 30일 자, 이문역 역장을 마지막으로 철도공무원을 정년퇴직하였다. (옥조근정훈장 수상)
이후, 2001년 9월 1일부터 학원 차량 운전 1년, 아파트 경비원 8년, 학교 당직 전담원 5년 등을 하다가 2020년 8월 31일 자로 직장 생활에서 완전 은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