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溫) 원자(ion)’라는 이름 뜻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잘하고 좋아하는 일, 여행과 글쓰기를 하며 살아갑니다.
말보다는 글로, 영상보다는 사진으로 소통하는 편이 편합니다.
느긋하게 걸으며 오롯하게 느끼는
정처없는 방랑자, 거침없는 글쟁이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사물이나 현상의 고유한 성질, 그 사물이나 현상이 놓인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는 현재 시제에서 가장 빛나는 말, 과거형이나 미래형을 쓸 수는 있지만 순간의 시제가 잘 어울린다. 해서‘영원한 찰나’, 사진과 닮았다. 형용사는 동사와 명사처럼 일대일 대구를 이르거나 테두리가 명확한 말이 아니다.
‘아름답다’만 해도 누가 기준이 되거나, 기준을 정할 수 없다. 하여 형용사는 맑은 물에 떨어진 먹물처럼 뚜렷한 윤곽선 없이 크게 번지는, 가없고 더없는 말이다.
(중략)
언젠가 이문재 시인이 내게 왜 그렇게 우리말을 파고드는지 물었다. ‘작가는 사물의 이름을 아는 자’라는 박완서 작가의 말을 빌려오고 싶었지만, 그리 멋진 말은 나중에 알았다.?
그 질문의 답을 찾던 중, 우연히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공연을 보았다. 생전 처음 듣는데도 너무도 자연스럽고 아름다워 단번에 매료되었다. 아는데 모르고 살았던 지난날이 안타까울 정도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뒤늦게 시인의 물음에 답하고 싶어졌다. “우리말이 너무 아름다워서 오래도록 그 말을 머금은 채 그 안에 머물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