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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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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포암산인 산문집>

이상찬

포암산인의 손자로
전북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예술문화연구소장, 예술대학장을 역임하였다.
15회의 개인전과 500여 회의 국내˙외 초대 및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일본오원미술연맹 위원, 신 일본미술원 위원, 아트포럼인터내셔널 회장, 양평군립미술관장을 역임하였으며 대한민국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하였다.
현재, 전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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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어찌하여 밤벌레 소리 이리도 시끄러운가> - 2025년 8월  더보기

[엮으면서] 포암 선생은 나의 조부이자 스승이시다. 선생께서는 고종 갑신(1890) 정월 열 닷새, 구한말(1876~1910)의 격변기에 태어나 경술국치(庚戌國恥), 해방과 건국, 6·25 전쟁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낸 유학자로서 일찍이 학업에 힘써 향리에 『운림정사(雲林精舍)』를 세우고 동몽학습을 위하여 『해몽요결(解蒙要訣)』, 『증보계몽 편(增補啓蒙篇)』, 『동국역대(東國歷代)』, 『지나역대(支那歷代)』등을 편찬하여 인재 양성에 전력을 기울이셨다. 또한 유림의 석학들과 교유(交遊) 하면서성리학(性理學)을 강론하고 시문을 즐겨 《포암산인 사고(圃巖散人私稿)》 상·하권을 남기셨다. 선생의 학문과 선비정신은 많은 이의 추앙과 경모를 받아 각지에 수차례 초빙되어 가시는 곳마다 『장례정사(藏禮精舍)』, 『수장정사(壽牆精舍』, 『예곡정사(禮谷精舍)』라 이름 짓고 후학을 양성하시며 일생을 학문과 교육에 헌신하셨다. 운림정사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집 뒤편,병풍처럼 두른 대숲사이로 가파르게 놓인 30여 개의 계단 마루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3~4세로 짐작되는 유년기부터 할아버지 등에 업혀 집과 운림정사를 오가며 무릎교육으로 시작된 완고하고 엄격한 교육 방식은 어린 나이에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할아버지의 선비정신과 철학이 오늘 나의 정신적 뿌리가 되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으니 어찌 할아버지의 학문과 선비로서의 삶을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운림정사가 지어진 시기는 정확한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1925년경으로 추정되며, 1974년쯤에 소실되었다. 선생께서 운림정사를 짓고 나서 쓴 『운림정사 기(雲林精舍記)』에서 예견이라도 한 듯,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흥폐와 성쇠는 끝없이 서로 이어지니 정사(精舍)가 다시 거친 풀밭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하여 그대의 말은 찬사가 아니라 조소일지도 모르나니… (廢興成毁相尋於無窮則精舍之復寫荒草野田不可知也子之言非讚也)” “운림정사는 내가 죽더라도 잘 보존하거라” 생전에 할아버지께서 어린 내게 자주 하시던 말씀이었다. 그러나 철없던 나이에 그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운림정사의 정신은 불과 반세기의 짧은 역사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으니, 이 어찌 불효가 아니겠는가. 문집에 대한 말씀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나 유언이나 당부가 아니더라도 선대의 유업(遺業)을 정리하고 유고(遺稿)를 세상에 내놓는 일은 후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무이자 도리일 것이다. 사실 이 문집 출간 작업의 시작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시간은 늘 나만의 것인 양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해는 항상중천에 떠있을 것 같았으나 어느덧 석양이다. 서산마루에 걸린 해가 지기 전에 시집만이라도 빛을 봐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밤잠을 줄여가며매달렸다. 『포암산인 사고(圃巖散人私稿)』는 상·하권으로 되어 있다. 상권은 시집(詩集), 하권은 산문(散文)이다. 상권에는 총 130수의 시가 기록되어 있는데, 오언절구(五言絶句), 오언사율(五言四律), 칠언절구(七言絶句), 칠언사율(七言四律) 등 96수로 구성되었으며 자경과 기행, 헌작과 추모, 역사, 애국, 충절과 의리, 효, 선조 추모 등 고유한 전통 가치관과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선생의 깊은 학문과 철학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운림정사』 차운(次韻)과 『포암산인』 차운 21수에 더하여, 칠언율시 9수와 오언배율(五言排律) 4수의 화운(和韻)이 함께 실려 있다. 이들 차운과 화운은 균파(筠坡), 죽포(竹圃), 청양(靑陽) 풍양(楓陽), 등 당대의 많은 문인들과주고받은 시편들이다. 이 가운데 죽포 선생은 나의 외조부이시다. 문우로서 교유하던 조부와 외조부, 두 어른께서 사돈의 연을 맺은 것은 참으로 각별한 의미가 아닐 수 없다. 『포암산인 사고』 하권은 『태극도설(太極圖說)』로 시작하여 『이기화물도서(理氣化物圖敍)』, 운림정사 문답, 서간문(書簡文), 선대(先代)의 행장(行狀)에 이르기까지, 전형적인 유학자의 사유와 학문적 궤적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러나 시간의 벽으로 인하여 하권의 출간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육필 원고의 사장(死藏)을 막고자 시집 말미에 부록으로 덧붙였다.학계나 관심있는 분들의 연구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시대는 변했고 읽히지 않는 책은 서가(書架)에 박제된 자료에 불과하다. 한시는 시대를 건너 오늘의 독자들과 다시 숨 쉬어야 할 살아 있는 우리 문화의 한 맥이다. 이에 한문 해독이 어려운 독자도 한시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음을 달고 어휘 풀이를 하여, 그 문턱을 조금이나마 낮추고자 하였다. 다만 짧은 식견으로 선생의 깊은 시의(詩意)를 온전히 담지 못하여옥에 티로 남을까 그저 송구하고 부끄러울따름이다. 기록은 역사가 되고, 역사는 문화가 되며, 문화는 곧 국력이 된다. 선대의 유업과 자취를 정리하는 일 또한 이와 다를 바 없음에도 이를미루고 게을리한 탓에 선생께서 타계하신지 반세기가 훌쩍 지나서야 유고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으니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늦게나마 미루고 또 미뤄왔던 일생의 숙제를 마치고 나니, 오랫동안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바윗돌 하나를 내려놓은 듯 홀가분하다. 이 시집이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에 감사한다. 특히 번역의 일부를 맡아주신 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박순철 교수님과 초서 몇 글자를 해독하지 못해 막혀있던 물꼬를 시원하게 터주신 김병기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아울러 은무일 교수님과 남원 예총 윤영근 원장님의 귀한 도움에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드리며 곁에서 도와주고 응원해 준 아내에게도 이 지면을 빌려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2025년 녹음이 짙은 여름 양평 와우헌에서 손 상찬 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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