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바닷속 작은 생물들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수중사진가이다. 2020년 첫 개인전을 개최하고 여러 단체전에 참여했다. BSAC Korea 수중사진 공모전 대상 등 다양한 수중사진 공모전에서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초기의 수중사진 작업은 생태 기록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점차 사진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감정의 시각화’라는 주제를 탐구하며, 바닷속 생물의 움직임과 색감, 구조를 통해 감정적 요소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정신병동 환자들과의 사진 작업으로 이어졌다. 현재는 정신병동에서 환자들과 함께 사진을 통해 정서적 교감을 하며, 사진이 감정 표현과 치유의 도구가 될 가능성을 고민하고 있다. 수중에서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던 방식이 이제 인간의 내면과 비언어적 소통을 기록하는 작업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현재 제주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며, 사진을 통해 인간과 자연, 그리고 감정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하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바다를 두려워해 왔다. 물공포증을 가진 나에게 바다는 너무나 거대해서 결코 가까이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어둠으로 가득 찬 심해를 상상하면 숨이 막히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결은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켰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순간, 나는 두려움을 벗고 바닷속으로 한 발 내디뎠다.
나는 바다를 알지 못한다. 무지함은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불러오곤 한다. 공포와 호기심.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팔을 스쳐 지나가는 작은 나뭇잎은 무섭다. 반려 고양이가 소리 없이 다가올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듯, 바닷속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렵다. 인간은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불을 밝혔지만, 어둠 너머를 상상하는 것은 오롯이 호기심이었다. 만약 탐구하는 본능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어둠 속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내가 카메라를 물속에 담그고 생명의 흔적을 기록하기 시작한 이유도 바로 그 호기심 때문이었다.
햇살이 찬란히 부서지는 수면 아래, 바다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빛과 그림자가 서로를 가로질러 춤추고, 생명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숨 쉬며 움직였다. 물속에서 빛은 흐느적거렸고, 깊어질수록 색과 형태는 낯선 결로 변했다. 고요한 세계 속에서 생명들은 말없이 자신만의 감정을 흘려보냈다. 거북이의 눈동자에는 긴 기다림과 아득한 그리움이 깃들었고, 홀로 떠다니는 해마는 침묵 속에서 외로움을 품었다. 해파리는 빛을 머금은 채 꿈처럼 흔들렸으며, 작은 치어들은 서로 부딪혀 연대의 무리를 이루었다. 나는 셔터를 눌렀다. 사진에 찍힌 순간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감정의 흔적이었다.
인간관계는 늘 언어를 통해 쌓이고 허물어진다. 나는 거북이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말미잘이 어떤 마음인지 알지 못한다. 거북이나 말미잘뿐 아니라, 나는 당신도 모른다. 당신이 “외롭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당신의 외로움을 모르고, 설령 당신이 “외롭다!”며 내 어깨에 기댈 때조차 외로움이 얼마나 깊은지, 어떤 원인에서 비롯됐는지, 혹은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그 외로움을 덜어 줄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바닷속 거북이뿐만 아니라 나는 당신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나를 아는 것도 아니다. 나도 나를 모른다. 내가 위로받고 싶을 때 나는 이걸 어떻게 당신에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당신에게 말해도 되는지도 모른다. 위로받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를 때가 있다. 왜 위로받고 싶은지도 모른다. 내 감정을 정확히 모르니 나를 당신에게 설명할 수도 없다. 결국 내 마음이나 바다나 나에게는 그냥 ‘대상’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내 ‘마음의 바다’에서 마음은 바다이고, 바다는 마음이다. 내가 바다에서 본 건 바로 나였다. 나의 내면에서 유영하는 나의 감정이었다.
바다는 나에게 질문하는 방법을 던져주었다. 수많은 질문을 마주 대하면서 결국, 바다는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나는 바닷속에서 나의 내면과 함께 떠다니는 감정을 만났다.
감정은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지만, 때때로 흐릿해지고, 증기처럼 사라질 수 있다. 우리는 감정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치기도 하고, 표현할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해 무의식적으로 숨기기도 한다. 그러나 감정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며, 삶을 풍요롭고 깊이 있게 만드는 힘이다.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과정은 우리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자, 타인과의 연결을 형성하는 여정이다.
사진 또한 감정을 담아내는 매개체다. 사진은 단순히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보이지 않는 감정을 새롭게 각인시킨다. 감정이 표현되지 않으면 사라지듯이, 사진도 의미 없이 소비될 수 있다. 그러나 적절한 맥락 속에서 감정과 사진은 서로를 보완하며, 보는 이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사진을 통해 우리는 감정을 재조명하고, 잊고 있던 감정의 흔적을 되살릴 수 있다. 물속에서 빛은 흔들리고 색채는 유영하듯 변화하며, 피사체는 흐릿하지만 동시에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바닷속에서 촬영된 이미지는 단순한 생물 도감이 아닌, 한 생명의 순간 속에 깃든 감정의 결을 포착하는 과정이다.
세계 각국의 언어에는 우리가 쉽게 지나쳐버렸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단어들이 존재한다. 일본어 ‘이타이’는 아픈 감정을 포함한 공감의 깊이를 담아내고, 포르투갈어 ‘사우다데’는 형용할 수 없는 그리움과 부재의 감정을 의미한다. 인도네시아어 ‘자무’는 감정의 쓰라림이 삶에서 정화될 수 있음을 상징한다. 이렇게 감정 언어들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내면의 풍경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표현하기 어려웠던 감정을 구체화해 보여준다.
이번 작업 『마음의 바다』는 수중 접사 사진과 감정 언어를 결합하여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감정의 은유이자 촉매로 작용하며, 관람자의 경험과 해석에 따라 다층적인 의미를 형성한다. 사진은 언어와 결합할 때 더욱 강한 울림을 지닌다. 나는 『마음의 바다』를 통해 감정과 생명의 결을 탐색하며, 나와 타인의 감정을 더욱 풍요롭게 연결하는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바다는 내면의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며, 수중 사진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한 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