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완전히 차단된 터널 속을 걸을 때면 여름도 한낮도 다른 세상처럼 지워졌다. 소리의 울림과 공기의 흐름, 냄새마저도 달랐다. 터널이니 당연한 걸까? 어쨌거나 그 터널을 통과하며 나는 다른 차원에 존재하고 있을, 이제는 곁에 없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터널을 지나는 순간만큼은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직선으로 흐르는 것이 아님을 느꼈고, 어느 순간엔 정말로 그렇게 믿게 되었다. 그 터널을 걷던 시간이 있었기에 마음 편히 용기를 내는 엔딩의 방향으로 자경을 밀어줄 수 있었다.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걷던 여름의 터널을 이제 막 빠져나온 기분이다.
2024년 가을
여기 실린 소설들을 쓸 때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도대체 인간은 강인한 거야 나약한 거야……’
자주 떠올린 공간도 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 2호선 환승역 계단입니다.
저는 인파에 밀려 딱 한 계단씩 규칙적인 리듬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정수리를 보며 아주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이란 매번 변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을 이들 중 하나로 그리자는 마음은 늘 새깁니다. 가령 주말에 들키고 싶지 않은 진실 하나가 생겨버린 사람. 그럼에도 월요일 출근길에 오른 사람. 인파에 밀려 세상의 속도로 계단을 내려가야만 하는 사람.
쓰다보니 저에게 소설을 쓰는 일은 사람을 대하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뜨끈한 불 앞에 사람이 모이듯이 이야기 근처에 사람이 모이고, 저는 그게 늘 그립고 좋아서 계속 소설을 쓰는 것 같습니다.
2026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