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운수 좋은 날」의 마지막에 나오는 김첨지의 대사는 수많은 위대한 작품 속 명문장이 그러하듯이 시대를 초월하는 울림을 가지고 있다. 현진건 선생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 억세지 못하고 눈물이 많다. 악역을 맡은 사람조차 진정 밉지는 않다. 그 시대를 보는 선생의 눈이 늘 눈물에 젖어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선생의 작품을 읽을 때는 미리 마음이 아팠다. 언감생심 선생과 나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나는 선생보다 훨씬 좋은 시대를 살면서도 내 시대를 연민하는 마음이 적다. 연민은 적게 하고 불만과 적의는 가득해서 글이 거칠고 모가 져 있다. 선생을 기리는 상을 받기에 턱없이 부족한 줄 알지만, 앞으로 한 걸음 뗄 때마다 이 상의 무게를 의식하겠다는 다짐으로 우선의 염치를 차리려 한다. - 현진건문학상 수상소감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사건은 1989년 부산에서 일어났다. 우리 언니도 참여했던 시위 현장에서 언니의 선배가 당했던 그 사건을 접했을 때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때는 학교에서 선생이 학생을 때리고 욕하는 일이 흔했고, 길에서 어른이 아이를 혹은 남편이 부인을 폭행해도 간섭하지 않는 것이 예의였다. 경찰이 고문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허가받은 시설에서 부랑자나 깡패를 잡아가서 갱생시키면 특진과 훈장이 주어졌다. 길에서 경찰이 요구하면 신분증을 제시하고 가방을 열어 보여주어야 했다. 내가 살아갈 세상은 무섭고 부조리했다.
시간이 흐른 뒤 마지막 불꽃 같았던 1991년의 잇따른 죽음과 엄청난 희생에 비해 허무하게 무너진 학생운동의 한계에 대해 사람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았다. 팔십년대 학번 선배들은 학생운동이 대중을 끌어들여 끝내는 작은 승리를 가져왔던 1987년의 유월 항쟁을 전설처럼 회상하곤 했다. 그리고 후일담 소설이라고 불리는 일군의 작품들이 나왔다. 당시의 나는 그런 담론들이 아니꼬웠다. 우리가 아직 살고 있는 시간을 이미 지나간 어떤 것으로 간주하는 것 같아 마음이 상했다. 나는 여전히 부조리한 세상에서 ‘언니들’의 영정과 부상까지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동생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