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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6411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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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세트]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 당신의 퇴근은 언제입니까 - 전2권>

[큰글자도서]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일하는 사람들만 보면 ‘글 써보실 생각’이 없느냐고 묻곤 했습니다. 출근길에 빌라 계단을 내려오며 마대로 걸레질을 하는 청소노동자와 마주쳐서는 “저 혹시…… 이 일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글로 써보실 생각 없으세요?” 물은 적이 있습니다. 청소노동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멋쩍어하며 “에이, 글 못 써요”라고 답했습니다. 굵은 금목걸이를 건 목에 연신 땀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분과 몇마디를 더 주고받다가 빌라 현관을 나섰습니다. 미안했습니다. 그저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이에게 괜한 말을 던졌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대화들이 아무 힘이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청소노동 자체가 이미 세상에 기여하는 바가 분명한 일이라고 해도, 그 노동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보십사 청하는 것은 또다른 의미가 생겨나는 계기가 됩니다. 당신의 노동을 우리가 알고 있고, 그것에 감사하며, 당신의 노동으로부터 생겨나는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을 건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주침은 또다른 사건으로의 전환입니다. 비록 거절당했지만 글을 청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가 더 반가웠고, 이후 우리는 서로 더 크게 인사했습니다. 「6411의 목소리」 편집자문위원회 회의는 ‘어디에 이야기가 있는가’ 두런두런 궁리하는 자리였습니다. 또한 저마다의 안테나를 세워 새벽의 ‘6411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승객들을 발견해내는 환대의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다는 걸. 노동이 없는 세상은 존재할 수 없고, 세상에 존재하는 노동만큼의 새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법전에는 나오지 않는 노동, 관료들의 서류에는 적혀 있지 않은 모든 노동의 이야기를 할 수만 있다면, 다 모으고 싶습니다. 농부가 일을 해야 세상 사람들이 밥심으로 일할 수 있고, 주얼리 노동자가 반지를 깎아야 사랑을 약속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혼자서 이룬 것처럼 착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실상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타인의 노동 없이 살 수 없는 약한 존재입니다. 타인의 흔적이 다양한 방식으로 스미고 있어 분별하기 어려울 뿐입니다. 서로가 스미며 사는 관계를 꼭 노동이라는 이름으로만 불러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술과, 지식, 여행과 쉼 속에서도 서로에게 기대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사람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외국인이거나 이주민은 물론 우리 사는 곳이 이방인 이들, 우리 사는 곳이 망명지인 이들에게도 깊게 의존되어 있습니다. 그 숨어 있는 관계의 이야기에도 우리는 주목합니다. ―여는글, 「작은 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 부분

당신의 퇴근은 언제입니까

‘6411의 목소리’는 그렇게 녹아서 형체를 잃어가는 이들에게도 자기만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작업입니다. 거대한 액체화 과정 속에 존재하지만, 이곳에 모인 각자의 이야기들은 윤슬처럼 빛납니다. 나의 각도로 말하면서 세상의 볕을 되비춥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어떤 문학보다 진실한 예순가지의 기록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평소 무심하게 지나친 이야기입니다. 혹은 알지만 모른 척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당사자의 입을 통해 직접 듣는 경험은 여러분의 삶을 되돌아보게 할 것입니다. 이들이 느꼈던 기분이 나의 경험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할 것입니다. 나의 언어가 출렁일 때, 나와 파동으로 연결된 다른 물결들도 감각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당신의 퇴근은 언제입니까’라는 질문은 당신은 지금 어떤 자리에서 어떤 시간을 살고 있는지 묻는 것과 같습니다. 이 질문은 다른 사람의 하루를 상상하게 하고,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헤아리게 합니다. 경쟁을 강요받는 한국사회는 겉으로는 선택지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경쟁하거나 새 판을 짜야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은 오롯이 개인의 몫으로 전가됩니다. 성공과 실패는 손바닥의 앞면과 뒷면처럼 달라붙어 있습니다. 약육강식의 논리는 자유와 공정이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돼 널리 퍼졌습니다. 외부 착취와 내적 착취 속에서 우리는 사회적 다윈주의의 공모자가 되고 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노동자는 쓰러집니다. 우리는 온전히 퇴근할 수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다녀올게” 하고 집을 나섰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도 지난 한해만 827명에 이릅니다. 안전하게 일하고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으며 안녕히 집으로 돌아가는 상식적인 일이 대한민국에서는 이토록 어렵습니다. 오늘날의 휴식과 여가는 노동을 위한 준비 시간에 가깝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자기개선 강박 속에서 퇴근은 곧 다른 노동의 시작이며, 끝내 오지 않는 약속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퇴근의 굴레에 대해 질문해야 합니다. 자본주의라는 야만적 체제의 부품으로 속박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퇴근을 묻고 내일의 안부를 물어야 합니다. 그것은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질문이 되고,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물음이 됩니다. 질문은 작은 울림에서 시작돼 한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세상을 바꾸는 힘으로 이어집니다. ―6411의 목소리 편집자문위원, ‘여는 글’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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