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꿈을 잊은 당신에게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거나 본업 외에 부업으로 그런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며 살면 그보다 행복한 삶이 없을 것입니다.
문필가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법률가, 행정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연이어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진로를 변경, 대학 졸업 후 대기업 무역부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 바쁜 생활 중에도 꿈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여 20대 후반, 40대 중반에 기회가 있었으나 그때는 젊은 치기에 간절함이 덜 했던 게 아닐까! 또한, 사회 현실도 여가를 활용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니었습니다. 현실에 적극 순응, 적응하며 성실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성실히 삶을 사는 것만이 잘 사는 것이 아님을 뒤늦게 깨닫고, 늦었지만 어린 시절의 꿈을 돌아보고 그 시절 꿈의 실현을 위해 비록 서툴지만, 많은 시간을 노력한 결과와 그동안 틈틈이 써온 글들과 간간이 문학지에 발표한 글들을 모아 첫 시집 <잊힌 꿈을 찾아서> 이후 2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꿈을 잊은 당신에게>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시고 지도편달과 윤문감수를 해주신 샘문그룹 시인 이정록 회장님, 교수님께 진심으로 머리를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신 서촌 김원 시인님, 은설 강소이 문학평론가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끝으로 문학에 일천한 저를 믿고 항상 응원의 말로 지지 해주는 가족과 친지, 친구, 저를 아는 모든 분께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과 함께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 사랑합니다.
특히 문학을 지향하는 젊은이들에게 ‘꿈을 실현하기 위한 열정과 노력에는 시한이 없다’라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26년 6월 햇살이 밝은 날
까치산 자락 서재에서 석강 김기홍 드림
잊힌 꿈을 찾아서
흔들리는 화물차에서 눈을 뜨니 신작로 한쪽 공터에서 인부 몇 명이 장독, 책장, 책상 등 이삿짐을 내리고 있었다. 그곳 충북 영동군의 한 산골 마을이 내 유년 시절 및 초등학교(한 학년당 30여 명, 전교생이 약 200여 명) 2학년까지의 생활 터전이었다. 한 마을 건너에는 조부모님, 백모님이 계시는 큰댁이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말, 부친의 직장 이동에 따라 청주의 한 학교로 전학을 했다. 전교생 2,500명 이상 되는 큰 학교였다. 낯선 환경에도 불구하고 친구들도 바로 사귀고 곧, 적응했다.
4, 5학년이 되면서 친하게 지내던 몇 친구들이 서울로 전학을 가서 외톨이가 된 느낌이었으나 이사 간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울을 동경하게 되었고 계속 연락하니 일기에 쓸 내용이 많아졌으며, 그 일기는 중·고등학교, 대학 때까지 거의 매일 쓰게 됐다.
중학교 때부터는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그 시절 학생 종합 잡지인 <학원>을 접하게 되고 글쓰기에 재미를 느껴 문필가,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평일은 물론 일요일 공휴일에도 도서관에 들러 틈 날 때마다 문학 전집 등을 탐독하여 홀로 글을 쓰고 <학원> 잡지에 그 작품을 투고도 하였다. 투고한 시 작품 중 뽑혀 발표되거나 입선 외 가작으로 뽑힌 작품이 꽤 있었다. 많은 독서량과 매일 쓰는 일기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고교 졸업 후 법정 계통의 대학 진학에 연이어 실패하고 현실에 밀려 상경계로 진로를 변경, 졸업 후 무역 부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바쁜 직장생활 중에도 꿈의 실현을 위해 노력했지만, 그 시대 현실은 여가를 내고 취미 생활을 한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아 현실에 적극, 적응하여 직장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실에 적극, 적응하여 성실하게 삶을 사는 것만이 잘사는 것이 아님을 뒤늦게 깨닫게 되고 늦었지만 어린 시절의 꿈을 돌아보고 그 시절(1963~1968) 꿈의 실현을 위해 비록 서툴지만 수많은 시간을 노력한 습작품들을 모아 시집을 꾸며서 세상에 내놓습니다.
도움을 주시고 지도편달을 해주신 샘문그룹 시인 이정록 교수님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끝으로 저를 응원해준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출간의 기쁨을 함께합니다. 친구, 지인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석강 김기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