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첫 시집을 내게 되었다.
시를 쓰지 않고 보낸 세월은 참으로 길었지만, 시 곁을 떠난 적은 거의 없었던 듯싶다.
시가 철저히 어떤 수단이 된 이 시대에 시를 쓰고, 시집을 낸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망설이다가 시집으로 묶어 보았다. 1, 2부는 금년 봄부터 쓴 30편의 시들이고, 3부는 젊은 날에 쓴 시 일부를 이리저리 찾아서 같이 실었는데, 특히 암울하고 참담했던 1980년대에 쓴 시를 다시 마주하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시가 피폐하고 강퍅한 시대를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 여기 실린 시편들이, 중심부에서 멀어져 허탈감을 느끼지만, 꿋꿋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잇대어 있다면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 시집이 나의 제자들이나 나를 아는 이들에게는 뜻밖에 받는 반가운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고, 다시 시를 쓰게 일깨워준 오랜 벗 정만진 작가, 그림으로 시의 분위기를 한층 돋우어 준 정연지 화가, 시집 출간에 힘을 보태준 반려자 김인숙 여사에게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