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근세사 비밀의 열쇠 아미르 티무르
1996년 우즈베키스탄으로 유학을 떠난 필자는 타슈켄트에서 아미르 티무르Amir Temur, Tamerlane를 만났다. 이곳으로 떠나기 전에 그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마침 그 해가 아미르 티무르 탄생 660년이었기 때문에 우즈베키스탄은 대대적으로 그를 기념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대한민국 국정교과서 세계사 책에 단 한 줄만 적혀 있던 아미르 티무르가 그의 출생지역인 신생국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러한 광경을 보면서 아미르 티무르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칭기즈칸에 버금가는 위대한 정복자로 칭송 받는 인물이 왜 세상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먼저 그와 관련된 문헌들을 찾아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와 관련된 문헌을 찾을 수 없었으며, 국외에서도 그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문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에는 1991년 독립 이후부터 일찍이 그와 관련된 다양한 문헌들이 출간되고 있었다. 필자는 우선 눈에 띄는 대로 책을 구입했다. 그런데 당시에 우즈베키스탄에 발간된 아미르 티무르와 관련된 문헌들은 대부분 우즈베크어로 적혀있었기 때문에 초급 우즈베크어를 배우고 있던 필자에게는 벅찬 내용이었다. 그래서 먼저 세계대백과사전과 러시아어판 우즈베키스탄 역사책들에서 그를 찾아보았다. 이 문헌들에서 필자는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모든 문서에는 그가 천재적인 군사전략가라고 적혀 있었다.
둘째, 그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너무나 상반되게 나타났다. "칭기즈칸이 파괴자이면 아미르 티무르는 창조자이다"라고 적힌 문헌들이 있는 반면에 "칭기즈칸이 창조자이면 아미르 티무르는 파괴자이다"라고 적힌 문헌들도 있었다.
그를 묘사한 전형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미르 티무르는 14세기에 현재의 우즈베키스탄에 국가를 세우고 천재적인 군사전략과 용맹성을 무기로 중국을 제외한 유라시아 대륙에 존재했던 국가들과 전쟁하면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으며, 수많은 전리품을 바탕으로 사마르칸트를 당대 최고의 도시로 만들었지만 잔인한 성품으로 인해 가는 곳마다 무자비한 파괴와 학살을 자행한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이었다."
위의 내용만으로도 아미르 티무르는 분명히 알렉산더 대왕, 칭기즈칸, 나폴레옹, 히틀러 등과 같이 한 시대를 혹은 한 세기를 풍미한 역사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 역시 위의 인물들처럼 침략, 파괴, 학살, 지배 등을 통해 정복자로 성장했기 때문에 동시대와 후대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필자는 더욱 의구심이 들었다. 천재적인 군사전략가라면 알렉산더 대왕과 나폴레옹처럼 평가가 있었을 것이고, 한 번도 국제전에서 패배하지 않았다면 칭기즈칸처럼 분석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쟁 과정에서 파괴와 학살을 자행했다면 칭기즈칸과 히틀러처럼 연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필자 역시 그 해 가을에 아미르 티무르를 타슈켄트에서 만나고, 그의 일대기를 조금이나마 접하고 난 후 그를 잊어버렸다. 학위과정에 들어가면서부터 그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05년 써네스트 출판사로부터 아미르 티무르를 내자고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사실 필자는 중앙아시아 중세사를 전공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1996년 당시에 그와 관련된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여전히 국내에는 아미르 티무르 책이 없었다. 필자는 장기간의 계
획을 세워서 집필해 보겠다고 했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려대 도서관 사이트에서 책을 찾다가 무심결에 아미르 티무르를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한 권이 있는 것이 아닌가! 미국의 저술가인 데니스 웨프먼Dennis Wepman이 1987년에 저술한 『Tamerlane』이 1993년에 국내에서 번역되어 책으로 나와 있었다. 놀랍고 반가운 마음에 책을 빌려서 하루 만에 모두 읽
었다. 그러나 무엇인가 허전함을 느꼈다. 아미르 티무르가 유라시아 대륙을 정복한 사실은 서술되었지만 어떻게 이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왜 그가 후대의 역사 속에서 사라졌는지 밝히지 못했다.
필자는 자료가 없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고 먼저 인터넷을 통해 아미르 티무르를 심층적으로 검색하고 필요한 문헌들은 구입하여 정리해 나갔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에서 구입했던 먼지가 쌓여있는 아미르 티무르 관련 문헌들을 찾아서 읽었다. 집중적으로 이 일만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자료들을 수집하며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3년 정도 자료를 모은 후 집필이 가능하
다고 판단되어 2년 동안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탈고를 하였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아미르 티무르를 서술하였다.
첫째, 그는 왜 유라시아 대륙을 정복하려고 했고 어떻게 지배했는가?
둘째, 선대의 정복자인 알렉산더 대왕, 칭기즈칸과 그가 가지는 차별성은 무엇인가?
셋째, 그는 창조자인가? 아니면 파괴자인가?
넷째, 왜 후대의 역사는 그를 철저하게 사라지게 만들었는가?
다섯째, 한 세기를 지배한 그가 후대에 남겨준 유산은 무엇인가?
여섯째, 우리가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위와 같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축적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분석을 하였다. 여전히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출발점으로 해서 아미르 티무르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왜냐하면 중세와 근세를 넘어가는 시점에 그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14세기의 유라시아 대륙을 설계하고 경영하였던 아미르 티무르는 중세에 번영한 아시아의 마지막 선과 근세를 만든 유럽의 출발선에 서 있었던 인물이다. 따라서 한 세기에 걸쳐 동시대를 지배했던 그를 배제하고 근세의 출발과 발전을 논하기는 힘들다고 판단된다. 예를 들면, 아미르 티무르 사후에 진행되었던 정화鄭和의 대항해, 근세 유럽의 출발선인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와 유럽 국가들의 해양로 개척, 인도의 무굴 제국 등은 그와 연관성을 가진다고 필자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위의 사건들과 연관된 역사문헌들을 살펴보니 아미르 티무르가 배제되어 있었다. 서구학계는 유럽의 르네상스와 근세로의 발전은 자체적인 역량에 의해서 탄생한 것이라고 대부분 주장한다. 그러나 문헌을 살펴보면 유럽의 중세는 오늘로써 끝나고 내일부터 바로 유럽의 근세가 시작되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세상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신神만이 할 수 있다. 장기간에 걸쳐 중세 기독교의 암흑기를 경험한 유럽사회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근세라는 거대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 이러한 논의가 지금 진행되고는 있지만 아미르 티무르는 여전히 배제되고 있다. 일단은 그를 본격적으로 역사의 무대로 다시 올리는 것이 첫 번째 과제라고 여겨진다.우즈베크인들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있다.
"Hudo xohlasa, hammas yaxshi bo'ladi." 신神이 원하시면,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졸고를 집필함에도 불구하고 넓은 아량으로 기다려 준 써네스트 출판사에 감사의 말씀을 먼저 드린다. 그리고 바쁘신 와중에도 부족한 초고를 꼼꼼히 읽어주시고 사실관계의 오류를 짚어주시면서 역사를 보는 새로운 안목을 키워주신 동서양교섭사의영원한 대가이신 정수일 교수님에게 감사를 드리며 무한한 존경심을 보낸다. 그 외에도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이자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이신 김의곤 교수님, 최준영 교수님, 동 대학교의 국제관계연구소 조진만 교수님께서 필자에게 보내주신 격려에 감사를 드린다. 또한 부족한 제자를 위해 추천사를 집필해주신 우크라이나 대사를 역임하신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허승철 교수님과 한국의 유통수준을 높이기 위해 동분서주하신 와중에도 추천사를 적어주신 롯데마트 노병용 대표이사님께도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집필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주신 존경하는 부모님과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10년 늦가을에
억지 부리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나는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 이 책을 펼쳤다. 그런데 이 책 속에는 진정한 스승이 아니라 미친 사람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진정한 현명함을 보지 못했다면 세상 어떤 책에서도 그 현명함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 1617년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에서 발행된 <나스레딘 교서>의 서문 중에서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고집과 억지를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생각한 대로 일이 잘되지 않거나 어려운 상황에 놓여서 자신의 생각을 실현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고집과 억지를 더욱 부리게 된다. 그리고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 갑자기 화를 낸다. 이 화는 커다란 문제를 일으켜서 피할 수 없는 불행을 낳기도 하고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만들기도 한다.
화를 내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인정하고 내 주장을 포함한 억지를 부리지 않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안 된다. 때로는 억지인지 뻔히 알면서도 억지를 부려본다. 억지 한번 부려보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 우울한 회색 빛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하지만 억지를 부릴 줄 알지만 자신의 화와 다른 사람의 화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스레딘의 억지는 생활의 활력이 되고 삶을 되돌아 보게 하며 자신과 타인의 화를 다스려 주는 억지이다. 자신의 화를 다스리는 억지이기 때문에 그의 억지는 현명한 억지이며 다른 사람의 화를 다스리기 때문에 힘 없는 사람의 억지이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만이,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그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된 억지를 부릴 수 있다.
그의 아름답고(?) 훌륭한(?) 억지 하나를 살펴보자.
나스레딘이 공동묘지를 지나가고 있는데 도둑떼와 마주쳤다. 그는 재빨리 숨었지만 도둑떼들이 그를 보고 말았다.
"넌 누구냐?"
"난 시체요."
"흥, 말하는 시체가 어디에 있어?"
"제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여기는 제 무덤이 확실합니다. 저는 이 공동묘지의 시체죠."
"시체가 어떻게 말을 하냐?"
나스레딘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군요. 제가 실수를 했어요."
"이 녀석을 실컷 두들겨 패줘라. 다시는 실수하지 못하게."
"잠깐만요. 살아계신 분들 당신들은 매일 수천 가지의 실수를 합니다. 그렇다고 당신들을 누가 패나요? 나, 이 시체는 평생 처음으로 단 한번 실수를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나를 패려고 한단 말이오!"
도적떼의 두목은 깔깔거리면서 웃고는 그를 풀어주었다.
나스레딘은 무쇠 솥이 아기를 낳게도 그리고 죽게도 만들고, 당나귀가 나무토막을 먹게 만들며, 말채찍 위에 보리를 말리기도 하며, 여우가 되어서 남의 닭을 물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앞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이들 우화 속에서 아주 현명한 나스레딘을 보게 될 것이다.
물심양면으로 어려운 요즈음 현자 나스레딘의 우화를 통해서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심정에서 그의 우화를 모으고 정리해서 써네스트와 함께 편집을 했다.
이 책은 그 동안 우즈베키스탄에서 발행되었던 '나스레딘' 관련 책들과 '나스레딘 우화집' 그리고 우즈벡어와 러시아어로 된 인터넷 자료 등을 정리하여 번역했다. ('엮은이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