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아직도 밝은 색인가?
소설집에 수록한 작품을 살펴보면, 예술가를 지향하는 주요 인물이 몇 명 있다. 「아모르 파티」에서는 작사가를 꿈꾸는 김순녀 여사, 「엘 콘도르 파사」는 하모니카를 통해 상처를 극복한 아버지 「용서」에는 빛의 화가가 「천오백 년 후에 내민 손」에는 칼럼니스트. 소설가가 주요 인물이다. 필자가 예술을 추앙하고 이끌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필자는 은연중에 예술가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또 하고 싶은 말은, 「베토벤의 후예」가 발표작으로 첫 소설이지만, 학창 시절에 짧은 소설을 두 편 더 쓴 기억이 있다. 여중 때 백일장에 수상한 작품을 기억하자면, 미소가 번진다. 아버지가 돌산을 개간해서 옥토로 만들어 집안이 다시 일어난다는 내용이었는데, 어디서 읽어 봄 직한 진부한 소재였다. 수필은 자기의 경험을 진솔하게 써야 하는데, 농사와 거리가 먼 직업을 가진 아버지를 농부로 만들었다. 진실성의 결여, 독창성도 문제가 있는 소설 같은 글이었다. 어떻게 수상작으로 뽑혔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니 운이 좋았다.
그리고 이 지면을 통해 감사하고 싶은 선생님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필자는 친구들이 신나게 뛰놀던 운동장에 앉아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거나 느낌을 끼적거리곤 했다. 아직 사춘기도 아닌데 이따금 멍한 눈으로 창밖을 통해 새들이 가는 방향을 쫓거나 하늘 보는 것을 즐겼다. 이를 눈여겨본 담임 선생님이 통지표의 의견란에 ‘아이가 종종 창가에 서서 깊은 생각에 골몰해 있음’이라고 적어서 부모님께 전해졌다. 그 후, 방과 후에 남겨져서 선생님이 선정해 준 동화책을 읽기도 하고 글짓기지도를 받았다. 나는 아이들과 뛰노는 것보다는, 책을 읽는 즐거움을 누리기 시작했다.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나는, 막연히 글 쓰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다. 내 글이 학교 신문에 실리거나 백일장 수상작으로 뽑혔을 때, 꿈이 탄탄대로 뻗어 나갈 것 같은 확신이 서기도 했다. 살아보니 마음대로 되지 않았지만, 지면이 주어진다면 4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적으리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금 지키려고 한다.
“문학의 끈을 이어준 한창관 선생님, 감사합니다.”
끝으로 초등학교 4학년 문예부를 시발점으로 지금까지 글쓰기를 계속 이어 왔으니 쌓아 둔 글은 많다. 문학적 이력이 긴 사실에 비해 소설집 한 권을 선보이는 점은 분명히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부끄러워하지는 않겠다. 문학지에 해마다 작품을 발표했으니, 작품은 남아 있고, 발표하지 않은 원고를 정리하면 대여섯 권 분량의 책이 나올 수 있다.
아직 늦지 않다고 마음을 다져본다. “한 일(一) 자를 10년 쓰면 붓끝에서 강물이 흐른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말의 뜻을 새겨본다. 내가 창작한 좋은 작품을 만나기 위해 더 분발해야 한다고, 나에게 청하며 희망을 잃지 말라고 다독거린다.
아직도 내 꿈은 밝은 색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