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개정 교육과정은 2015 개정 교육과정부터 실시한 역량 중심 교육과정을 더욱 강화하여, 학교의 전반적인 교육체제를 교육과정 중심으로 운영하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역량 중심 교육과정이란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핵심역량을 달성하여 교육목표에 도달하려는 교육과정을 말합니다. 이런 변화로 인해 교육과정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은 교육 현장에서 가르치거나 학습해야 할 내용이며, 교육에 관한 콘텐츠이고 교육을 담는 그릇입니다. 교육사와 교육 전반에 대한 이해, 학문적인 개념이나 우리나라 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가 잘 되어 있으면 나머지 교직 과목에 대한 이해도 훨씬 쉬워진다는 의미입니다. 교육과정은 이해가 우선입니다. 이 책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서 학생들이나 학교에 몸을 담고 있는 선생님들이 교육과정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한 책입니다.
어떤 교사가 수업 시간에 학생에게 A, B, C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학생은 A만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교육과정은 A, B, C입니까? 아니면 A입니까?
첫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 어떤 학생은 A, B ,C가 교육과정이라고 대답하고 어떤 학생은 A가 교육과정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한 학기가 끝날 때는 대부분 학생은 A, B, C도 교육과정이고 A도 교육과정이라는 사실과 그 차이점을 명확하게 깨닫습니다. 이 책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바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는 20대부터 종교나 철학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가 불교재단이라서 고등학생부터 불교를 접하여 틈틈이 공부했다. 도교나 신선 사상은 대학 시절에 흥미를 느끼던 차에, 결혼 후 처갓집 인근에 도인 한 분을 알게 되어 제법 소상히 공부를 한 바 있다. 유교 또한 관심은 많았지만 접할 기회가 없었다가, 서른이 되면서 유교를 석사과정으로 선택하면서 처음 이해하게 되었다. 불교나 도교처럼 종교적인 구원의 메시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이치로서 이만한 것이 없었다. 젊어서는 『주역』에 나오는 「적덕지가 필유여경(積德之家 必有餘慶)」이나 「경이직내 의이방외(敬以直內 義以方外)」와 같은 문구를 걸어놓고 실천하려고 했다.
『논어』에 보면 「사지어도이치악의악식자 미족여의야(士志於道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라는 말이 나온다. ‘선비가 도에 뜻을 두었다고 하면서도 초라한 옷과 거친 음식을 부끄러워한다면 그런 사람과는 말을 섞을 가치가 없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젊어서 공부를 하고 싶으면서도 경제적 활동을 버릴 수 없었던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영국의 철학자 제임스 알렌도 그의 나이 마흔 즈음에, 다니던 금융회사를 그만두고 영국 남서부 작은 바닷가 마을로 내려가서 그곳에서 평생 묵상과 기도,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면서 영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젊은 시절 나의 롤 모델이었다. 그 당시 나는 언젠가 동양철학연구소를 열어 종일 그곳에서 책도 읽고 사색에 잠기고, 강의와 집필을 하는 삶을 꿈꾸었다.
삶이란 예측 불가하여 무작위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삼라만상은 내 마음의 그림자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의 미래는 정확히 잠재의식에 각인된 생각대로 펼쳐지게 된다. 가끔 예전의 일기장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일기장에 적혀있던 내용 중에서 대부분은 현실 세계에 그대로 실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흔 후반에 찾아온 변화도 같은 맥락이었다. 오랫동안 내 잠재의식에 있었던 생각이 실현되는 계기가 온 것이다. 일말의 미련도 없이, 약 23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동안 내가 꿈꾸던 삶을 살기로 하였다. 그 이후, 한두 번의 직장생활을 하기도 하였지만, 교육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지금은 철학연구소를 차려서 공부하고 강의하고 집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십 대 꿈꾸었던 삶을 중년 이후에야 실천하고 있다.
이 책은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나름대로 정리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교육학으로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이미 받았지만, 철학박사 논문은 또 달랐다. 주제를 정하는 일에 거의 일 년을 매달렸다. 그러다가 조선조 선조 시절에 성주 지역에 살았던 유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에 관하여 논문을 쓰기로 하였다. 나도 본관이 성주이고, 우리 윗대는 성주에서 기거하시면서 한강과 친분이 매우 두터운 관계였다. 그래서 다른 유학자보다 더 끌리게 되었다. 수양론을 주제로 택한 것은 불교나 도교에서 말하는 수행이라는 관점과 비슷하게, 수양은 불완전하고 유한한 인간의 삶에서 벗어나서 완전한 삶을 향하여 나아가는 거의 유일한 통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강의 문집인 『한강집』을 처음 일독하고 나니, 정신이 멍하였다.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였다. 그 막막한 이유를 생각해보니, 유교의 수양론에 관하여 내가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유교의 수양론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먼저 동양에서 수양론의 가치에 관하여 정리하였고, 불교나 도교 등의 수양론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그다음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 사서의 내용을 수양론 관점에서 다른 논문이나 전문서의 도움을 받아서 나름의 관점에서 정리하였다. 이런 식으로, 수당 시대를 거쳐서 북송오자(주돈이, 소강절, 장횡거, 정명도, 정이천)의 수양론과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의 수양론까지 공부하였다. 조선조에는 수많은 훌륭한 유학자가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한강의 사상에 직접 영향을 끼친 한훤당 김굉필과 퇴계 이황, 남명 조식의 사상을 수양론의 관점에서 내 방식으로 정리해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한강집』을 읽어 보았다. 그랬더니, 『한강집』에 나와 있는 하나하나가 수양론 관점에서 재해석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해서 완성한 것이 나의 박사학위 논문(「한강 정구의 수양론에 관한 연구」)이었다.
2022년 가을이었습니다.
「인문학의 이해」라는 주제로 대학에서 1학년을 대상으로 막 강의를 시작할 즈음이었습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제 강의를 듣는 학생으로부터 메일이 왔습니다. 그 학생은 학교 다니는 것이 고통스럽고 힘들어 그만 퇴학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기 주위에는 이런 고민을 나눌 만한 어른이 없다면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저에게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인문학은 정답이 없으며, 따라서 인생도 정답이 없다고 강의한 후였습니다.
학생의 메일을 읽으며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했던 연설문을 떠올렸습니다. 아마도 이런 내용일 겁니다.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라.
억지로 다니지 마라.
지금이라도 가슴에 뛰는 일을 찾아라.
이 학생도 저에게 이런 대답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습니다. 그때가 9월이니까 어쩌면 이 학생은 봄, 여름 내내 학교에 잘못 들어왔다는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한 학기만 더 다녀보자고 겨우 마음을 다잡고 왔는데, 개강 첫날부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 정도 갈등했습니다. 스티브 잡스처럼 말해주고 싶었으나, 남의 인생에 너무 무책임하게 답변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스러웠습니다. 그 이유는 여기 인문학 강의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도전과 도피의 차이점 때문입니다. 현재 생활이 힘들어서 도피를 선택하면, 어디 간들 쉽지 않을 것이라 걱정되었습니다. 또 1학년 때의 갈등이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해결되는 경우도 많이 있어 이 고비만 넘기면 무난하게 졸업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한 학기만 더 다녀보고 결정하라’는 아주 일반적인 답변을 보냈습니다. 여러 대안 중 이것이 최선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다음 수업 시간, 그 학생과 눈빛이 마주쳤는데 저를 피하는 눈치였습니다. 제 대답이 마음이 안 들었나 봅니다. 몇 주 지나서 그 학생은 결국 휴학했습니다. 한 학기 내내 그 학생이 떠올랐습니다. 무언가 잘못한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스스로 해답을 찾았습니다. 제가 찾은 답은 에필로그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책은 한 학기 동안 강의한 인문학 강좌를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 자존적인 생활, 미래의 성공적인 삶, 편견으로부터의 해방, 소통과 행복, 부정적 감정의 치유, 부모에 대한 이해, 인공지능의 발전 등 우리 사회와 인생에서 꼭 필요한 키워드를 담았습니다. 인문학 책이 넘치는 세상입니다. 저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문학은 이 땅의 역사와 문화 • 사상에 근거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전래 사상, 불교, 유교는 오늘날에도 우리 삶에 꾸준히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우리의 전래 사상과 동양 철학을 인식의 기본 토대로 삼고, 오늘날의 현대 과학 기술과 합리성을 줄기 삼아 제가 생각하는 인문적 삶의 방식과 가치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책을 펴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동화, 인물들이 여러분에게 말을 걸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도덕 교과서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욕심을 버려라’, ‘마음을 내려놓아라’, ‘착하게 살아라’ 등의 당위적인 논법은 철저하게 배제하였습니다. 누군들 그런 주옥같은 격언을 몰라서 실천을 안 하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는 근본적인 원인을 좀 더 통찰력 있게 살피고,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치유와 실천 방법을 제시하려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오늘보다 더 나은 미래, 현재보다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모두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힘이 저는 인문학에 있다고 봅니다. 인문학을 접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강력한 치트키를 가지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많은 고민과 갈등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지는 것과 같습니다. 인문학을 통해 어제와 같은 오늘이 어제와는 전혀 다른 오늘로 바뀝니다. 행복을 만드는 자신만의 치트키, 자신만의 인문학을 만나고 싶은 분에게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문학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인문학을 통하여 어떻게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삶의 무게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 궁금하신 분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한꺼번에 다 읽지 않아도 됩니다. 필요한 부분만 꺼내서 읽으셔도 됩니다.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됩니다. 목차에서 마음에 끌리는 주제를 먼저 읽으셔도 됩니다. 바로 읽지 않아도 됩니다. 두고두고 읽으셔도 됩니다. 누구라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썼습니다. 가까운 친구나 이웃, 자랑스러운 아들과 딸에게, 존경하는 부모님에게 선물하시면 받는 사람도 틀림없이 좋아할 것입니다.
다시 봄입니다.
새 계절이 오듯 우리 인생을 새롭게 ‘다시 보는’ 기쁜 날들이 이어지길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