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주부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8세, 10세 두 아들의 엄마입니다.”
온라인 수업을 통해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무언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비슷하게 말했다. 열 명의 소개가 끝났지만, 그들의 이름이 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엄마’들이 모인 곳에서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면 나를 포함한 다수가 이렇게 말한다. 아이가 몇 명인지, 자녀가 몇 살인지를 언급하며 정작 자신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는 소개하지 않는다.
이름도, 직함도 없는 ‘엄마’라는 존재로 10년을 살았다. 유일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곳은 병원, 관공서가 전부였다. 강사는 그날, 자신을 소개할 짧을 글을 만드는 시간을 할애해 주었고 완성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다음 시간까지 숙제로 남겨주며 본인을 세상에 드러내길 바랐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을 표현할 단어는 ‘주부’, ‘엄마’, ‘경력단절녀’뿐일까? 워킹 맘은 직장 내 호칭도 있는데 그마저도 없다. 나를 중심에 두고 살지 않다 보니 자존감은 한없이 작아졌고 불안감, 초조함, 무기력함, 두려움 등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의 종합선물세트가 에워쌌다. 어느 포장지부터 풀어야 하는지, 아직 풀기에 이른 건지, 나를 위한 선택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망설임이 전부였다.
단화 대신 힐을, 민낯 대신 화장을, 에코백 대신 숄더백을, 잠바 대신 재킷을 입고 다니는 워킹 맘의 삶을 동경하고 때론 질투했다. 그들의 삶이 현실의 출구임을 알면서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가정주부’라는 이름하에 아무것도 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줄 알았다. 하루하루 숨 가쁘게 러닝머신을 달리고 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위로하며 문자 그대로 그 삶만을 위해 살았다. 아이들도 잘 키우고 싶고, 나도 성장하고 싶다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에서 몇 년째 제자리걸음만 할 뿐 방향을 찾지 못했다.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둘씩 해나가다 보니 내 삶의 신호등불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른 오전에는 독서와 글쓰기를, 낮에는 육아를, 밤에는 강의를 들으며 수험생과 맞먹는 스케줄을 소화할 때도 있지만 하등 문제 되지 않았다.
무작정 배웠다. 물먹는 하마처럼 미친 듯 삼켰다. 수집가처럼, 자격증이라는 종잇장을 쌓았다. 하브루타 지도사 1, 2급, 슬로 리딩 지도사, 화백 토론 심판, 상담 심리학, 가족 심리학, 티 소믈리에 등의 자격증으로 배를 채웠다. 배움은 ‘담는 것’이 아니라 ‘담기는 것’임을 알면서도 모른 체 했다. 언제까지 배우기만 할 건지, 활용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 건지 등 걱정이 몰아칠 때도 여전히 담고 있었고, 채울수록 허기질 때도 많았다. 이제는 아웃풋을 해도 되지 않을까 조언을 건네는 이도 있었다. 스스로를 현무암이라고 여기며, 여기저기 난 작은 구멍을 배움으로 메워갈 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에게는 반짝이는 눈빛과 마그마처럼 넘쳐흐르는 열정이 있었다. 여기서만큼은 ‘주부’, ‘경력단절녀’, ‘엄마’가 아닌 날것 그대로의 인간으로 부르고 불리었다.
중국 극동 지방에는 희귀종인 ‘모소 대나무’가 있다. 모죽(毛竹)이라 불리는 이 나무는 땅이 척박하든 기름지든, 씨앗이 뿌려진 후 4년 동안 3㎝밖에 자라지 않는다. 4년 동안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5년이 되는 해부터 매일 30㎝씩 성장하며, 6주차가 되면 순식간에 빽빽하고 울창한 대나무 숲을 이룬다. 그동안 뻗은 뿌리들로부터 엄청난 자양분을 흡수하여 세상에 위용을 드러내는 것이다. 단기간에 놀라운 성장을 한 듯 보이지만, 4년 동안 땅속에서 깊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결과이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잘하는 게 없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돼서 망설이는 엄마들을 만날 때면 지난날의 내가 떠올라 안타깝다. 아직은 그럴듯한 결과도, 성과도 내지 않았지만, 깊고 단단한 뿌리를 내리는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단 한 명에게라도 영감을 줄 수 있다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실행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다면’ 하는 마음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선 현실이라는 수많은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10년, 3650일의 일상을 지나 내 삶을 찾기 위해 발을 내디뎠다. 인디언 속담에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이 있다. 매일 반 발자국씩만이라도 함께 걷는다면, 우리도 모소 대나무처럼 자랄 수 있지 않을까.
“견디십시오. 그대는 모죽입니다. 비등점을 코앞에 둔 펄펄 끓는 물입니다. 곧 그 기다림의 값어치를 다할 순간이 올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대나무로 쑥쑥 커갈 시간이 올 것입니다. 자유로운 기체가 되어 세상을 내려다볼 시기가 올 것입니다.”
-김난도,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