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을 통해 내가 화나는 이유가 ‘아상’ 때문임을 알게 되고, 의사라는 직업과 원장이라는 직책이 주는 상에 집착하지 않으니 삶이 다소 편안해졌다. 그런데 나는 이전에도 『금강경』을 무수히 독송했는데 왜 이런 이치를 전혀 몰랐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금강경』을 독송하는 힘으로 어려움을 해결한다는 믿음에만 의지하면서 『금강경』에 적힌 글자를 읽기만 했던 것이었다. 경전 강의를 통해 글자가 전하는 이치를 알게 되니 화가 나는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어떤 생각[相]에 사로잡히고 있는지’를 떠올리며 자신을 조금씩 살피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사소한 짜증이나 번뇌가 줄었다.
처음 『금강경』을 읽었을 때는 ‘선세죄업 즉위소멸’의 글귀에 기대어 이혼 과정을 건너갈 수 있었고, 지금은 ‘아상’을 공부하여 성냄이 줄어드니 삶이 한결 편안해졌다. 저마다 『금강경』을 읽으며 마음에 와닿는 구절은 다를 것이다. 어렵고 뜻을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말들로 이루어진 『금강경』에 선뜻 다가서기에 부담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 시작을 일상적인 경험에 빗대어 풀어 나가는 『금강경』으로 만나 보면 어떨지 제안하고자 한다. 일상에서 만나는 가지각색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에 『금강경』을 처방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의 삶 속에서 이미 반짝거리는 보물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중심에 두고 『금강경』을 소개한다.”
이렇게 인문학 공부를 통해 배운 동서양 고전의 지혜는 조금씩 나에게 스며들어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게 했다. 질병을 해결하는 처방에 집중했던 의사에서 환자의 일상이 어떤지 자세히 질문하고 들어주는 의사로 말이다. 물론 여전히 목소리는 크다. 필요하면 환자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잔소리도 한다. 그리고 매일 먹는 밥이 지금의 몸 상태를 만들듯이 10년 동안 했던 인문학 공부가 병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
의사이다 보니 치료해야 할 병원균에만 집중했던 시야가 ‘공생’의 관점에서 미생물을 보도록 넓어졌다. 또 ‘위대한 건강’을 말한 니체를 통해 건강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게 되었다. 규격화된 정상 수치로 환자를 되돌리는 것만이 건강이 아니었다. 건강은 새로운 건강, 말하자면 지금 상태에서 새로운 삶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환자들한테 “다른 병원에서 선생님같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어요”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 말은 내가 다른 의사보다 더 낫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단지 인문학 공부를 통해 질병을 보는 다양한 견해가 생긴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