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가을, 마티고개나 때째 모퉁이에서 마을을 내려다 보면 다랑논의 벼가 황금 양탄자처럼 펼쳐져 보이고, 초목들이 아직 물들지 않은 산들이 샛노란 들판을 포근히 감싸 안은 듯했다. 그림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라 오래도록 바라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 들녘을 볼수록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대자연은 계절마다 자연 환경이 다르게 변하지만, 황금빛 물결이 넘실대는 가을의 풍경이 으뜸이었다.
고향을 떠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아름다운 사계절이 살아 숨 쉰다. 고향은 언제나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고 정겹다. 내 고향은 공주 ‘마라귀’다.
고희 기념문집 「내 고향 마라귀」를 발간하고 난 후에 아쉬운 점이 많았다. 또 한 권의 책을 발간하고 싶은 욕심이 잉태되어 틈틈이 준비했다.
세월이 지날수록 정신이 흐려져 나이가 들면 들수록 다가오는 날들은 현재의 날보다 혼미해져 갈 것이다.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글을 써서 문집을 발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현명한 길이라 생각되어 서둘렀다.
자연의 법칙인 사계절을 들여다보면, 따스한 봄이면 새싹이 돋아나 꽃망울이 움터 저마다의 아름다운 예쁜 꽃을 피우고 나뭇잎은 한여름에는 뜨거운 태양과 사나운 태풍 등 온갖 모진 고난을 겪고 견뎌냈기에 가을이면 곱디고운 단풍으로 물들고 열매가 영글어 결실을 보는 것처럼, 꽃보다 아름다운 우리네 인생도 자연의 순환과 얼추 비슷하다. 식물은 겨울이 다가오면 생육이 중단된 듯이 보이지만, 그들은 희망의 봄날을 위해 겨울잠을 자는 인고의 시간이다. 우리가 사는 인생도 그와 같으며 이쯤이면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끔 마무리할 시기이다. 나의 삶은 기복을 타고 넘고 넘어 어느새 금방 가버려 만추의 낭만을 즐기고 있으며, 얼마 있으면 늦은 가을이 지나 초겨울이 찾아오는 인생길을 맞이하게 됐다.
교직에서 아이들과 보람 있게 생활했고, 정년 후에는 지난날의 삶을 뒤돌아보고 기억을 더듬으며 글을 써 고희문집을 발간하여 참으로 의미 있는 삶이 되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힘들었으나 행복했고 자랑스러웠다. 요번 「솔모뎅이」 수필집을 발간하면 두 권의 책을 통하여 어느 정도 나의 속마음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정체성을 알 수 있어 많은 보람을 느끼며 이 책을 쓰는 동안 내내 행복했다.
2022년 초가을에 - 책머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