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불과 20미터쯤 냇물이 흐르는 하천을 건너다니었는데 장마철에는 수량이 많아 어른들도 도저히 건널 수가 없었다.
동네 어른들이 남학생만 옷과 가방을 건너 주고 20여 명씩 반티만 입고 어른이 첫 번째와 맨 마지막 학생의 손을 잡고 함께 건너 학교에 간 때도 있었다. 여학생들은 엄두를 못 내고 둑에 서서 구경만 하다 집으로 돌아갔다. 참 불편한 시절이었지.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아쉽기가 그지없다.
태어날 때 똑같은 시간을 주고 『노력하며 살라』 하고 인자하게 바라보는 분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 것을 까맣게 있고 허둥대며 살았으니, 그분이 웃음을 참지 못했으리라.
쉽게 말해 부모가 자식이 장성해 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을 테지 뭘...
고희를 넘기고 보니 튼튼한 동창들도 떠난 사람들이 많다.
『굵고 짧게 살라』고 한 말에는 어울리지 않게 여리게 지탱하며 살아왔지만 세상에 내놓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 무덤 속에 있으나 세상에 있으나 매한가지...
넘어가는 저녁 해를 벗 삼아 천천히 집으로 향하던 달구지가 다니던 시골 풍경이 그리운 때가 도래하였다. 흘러간 세월은 그리워한다고 다시 돌아오지는 않는다. 마음속의 정서를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책을 읽어라. 그중에 시집을 안 읽으면 人生이 바람 빠진 공 같거든……. - 머리말
우리나라를 옛 사람들이 금수강산이라 말했다. 아주 잘 어울리는 말이다. 옛적 사람들은 살림살이가 어려워도 성현聖賢의 道를 알고 마음을 닦아 사물을 올바르게 볼 줄 알았다. 어느 한 구석 도려낼 곳이 없다. 맑은 가을 하늘에 밝은 달이 두둥실 떠올라 방방곡곡을 비추면 그야말로 고운 비단을 깔아놓은 것 같았고, 아침 해가 동산에서 불끈 솟아올라와 온 세상을 비추면 새들은 기쁘다고 노래를 부르고 산마루에 구름이 힘겨운 듯 걸쳐있어도 노송이 허리가 아픈 듯 굽어보고 지나가는 행인이 글은 몰라도 『아니, 신선이 따로 있나! 지금 내가 신선 골을 지나가니 내가 신선이지 뭘...』 중얼거렸다. 아름답고 좋았던 시절은 다 지나갔고 하필 아귀다툼이 난무하는 시절에 태어나 듣고 본 것이 싸우고 울고 짜고 훔치고 강제로 빼앗고 욕심이 넘쳐 눈알이 튀어나올 듯하고 욕을 많이 해 이빨이 다 빠지고 잇몸이 썩어 들어가고.... 뱃속에 심술이 뭉쳐 암 덩어리가 머리통만 하게 자라면 그때서야 아이고 나 죽는다고 해봐야 끝장을 보고 마는 거지. 그렇게 살걸. 뭘 그리 서둘고 뛰고 비틀거리고 정신을 못 차리고 사나? 그래도 그런 속에서 얘깃거리를 주워 모아 또 한 권이 되었다.
太初에 하나님이 계획해 놓은 덕에 부모의 뼈와 살을 나눠 받아 옛 이야기가 덕지덕지 서려 있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시골 에서 태어나 괭이 메고 뒷동산에 올라 잔대 캐고 칡뿌리도 캐면서 마을에서 같이 자란 초등학교 동창들보다 좀 오래 머무는 것 같다. 가끔 고향친구의 소식을 들으면 아무개도 떠나고 누구는 입원해 있 고 달갑지 않은 소식이 많다. 내 생애에서 황금기 같은 시절을 함께 공직에서 보냈던 사람들도 소식을 들으면 ○○○ 씨는 아내가 먼저 떠나 자녀들하고 살고, 누구누구는 금년 가을이 오기도 전에 떠났다고 말했다. 가을은 그래서 쓸쓸한가……. - 저자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