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오늘도 씁니다
4년 전, 우리 마을 도서관 <시 쓰기> 프로그램에서 동시를 처음 만났다. 심심하던 차에 우연히 참여해 본 수업이었다. 시를 쓴다는 것도 낯선 일이었지만, 더군다나 동시는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었다. 놀이하듯 12회 수업을 마친 날, 강기화 선생님은 나에게 동시 한 번 써 보지 않겠느냐며 손 내밀어 주셨다. 그 손을 타고 글이 나에게로 왔다.
우연한 일이었다. 재능은 고려하지도 않고 선생님의 손을 덥석 잡았다. <동시 교실> 모임에 들어가 훌륭하신 선생님들 사이에서 읽고 쓰며 배워갔다. 제대로 공부하기도 전에 각 공모전에 응모했다. 다져지지 않은 글이었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선생님은 지적하고 만류하는 대신 지지와 칭찬만 해주셨다. 무턱대고 도전했다. 도전은 실력과 상관없었다. 13번 도전한 끝에 <시력검사>로 대상을 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큰 상이었다. 그저 매일 쓰고 용감하게 도전한 게 결실을 보았다. 천지도 모르고 시작한 동시가 어려운 문학이라는 건 한참 후에나 알았다.
동시는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 동시 너머를 보여주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양이 쌓여야 한다는 이은대 작가님의 말씀을 들었다. 동시처럼 매일 한 편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한글을 안다는 걸 무기로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글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내 언어는 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말을 위한 용도에 지나지 않았다. 말과 글은 책임감의 무게부터 달랐다. 용기만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날마다 빈 화면을 채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소재가 없어서 힘들기도 했지만, 처음 만나는 ‘나’와의 정면 대면이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남보다 오히려 나에게 무관심했다는 걸 알았다. 나에 대해, 내 안의 문제에 진지하지 않았고 고민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글을 쓰는 시간은 당황스러웠지만, 오늘은 어떤 나를 만나게 될지 또 한편으론 기대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 시간을 통해 나와 인생을 돌아보고 내 인생을 쓰기 시작했다. 서랍을 정리하듯 기억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글이, 글이 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내가 원고지 한 장 대신 써 줄 수 없고, 사랑하는 아들도 마침표조차 대신 찍어줄 수 없는 게 글쓰기.’라는 조정래 작가의 글에 통감했다. 누구도 의지할 수 없었다.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남편은 우는 나를 놀렸고 아이들은 힘들면 그만하라고 했다. 그러나, 내 인생 한 번 써 보고 싶었다. 지난 시간을, 사진첩을 들추어보듯 펼쳐보았다.
마흔 후반에 나에게 온 글은, 작은 내 세계를 확장 시켰다. 동시로 시작한 글은 수필로 이어졌고 <매일메일은자>라는 새로운 세상을 펼쳐주었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방송국 인터뷰를 하고 지면에도 소식이 전해졌다. 기적처럼, 처음 시를 배운 그곳에서 첫 특강을 하고 원고를 청탁받는다. 전혀 상상도 못 한 꿈같은 일들의 연속이다. 이런 날이 나에게 올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요가, 요리, 장사, 이것저것 기웃거려봤지만 내 것이 되지 않았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줄 알았던 글이 어느 날 내 품으로 왔다. 놓치지 않으리라 마음먹지만 언제 또 홀연히 떠나버릴 인연일지 알 수 없다.
나를 바라보게 하고, 사라진 내 과거를 살려낼 수 있는 유일한 도구, 오늘을 살게 하는 이유,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주는 글 앞에 겸허해진다.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다투지 않았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내세우기보다 순응하는 삶을 살았다. 남편은 똑 부러지고 야무진 대한민국 아줌마이길 원하지만, 그건 오히려 나에게 불편한 일이었다. 지는 듯 살아도 문제없었고 할 말을 굳이 다 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잘 살아야 좋은 글도 쓸 수 있다고 한다. ‘잘 산다는 것’의 정의를 내리는 것 또한 주관적일 테지만, 조금씩 철이 들어가는 게 잘 사는 게 아닐까 싶다.
소중한 내 인생, 이젠 흘러가는 대로 두고 싶지 않다. 비루했던 내 과거마저 부끄럽지 않게 해주고, 작은 나를 응원해 주는 글. 나는 글에 더 진심을 담아보려 한다. 오늘도 글이 될 것이기에 나는 글의 소재로 충실한 삶을 살아갈 테다. -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