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바로 이 지점, 즉 약속 이행이라는 측면에서 나는 위도와 경도의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열일곱인지 스물일곱인지도 확실치 않은 십대지만, 어쨌거나 계속 서로의 곁에 앉아 있다. 손을 만지거나 허벅지를 주무르기도 한다. 그들은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서로의 곁에 있는 대신, 서로의 곁에 있기 위해 약속들을 만든다. 결혼식 또한 이 같은 주먹구구식 약속에 포함된다. 이 과정은 내가 생각한 ‘하이틴 러브’의 낭만적 사랑과는 분명 달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어릴 적부터, 그러니까 십대 초반 즈음부터 작가가 되길 바랐다. 고로 책을 낸다면 후미에 무슨 말을 적을지 수차례 상상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여러 이름을 호명하는 감사의 글이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은 떠오른다. 일종의 건배사 같은 글들이었다.
막상 책이 나올 때가 다가오니 ‘작가의 말’ 쓰기는 어렵고 곤혹스러운 일이 되었다. 지난 몇 달간 이 글을 회피해왔고, 딱히 쓸 말이 없다고도 느꼈다. 하지만 정말로 쓸 말이 없는가 묻는다면…… 아닐 것이다. 지금의 나는 겁먹었고, 두려움과 똑바로 눈 마주치기에는 또 괴로운 탓에, 쓸 말이 없다고 말하는 쪽을 택한 듯싶다.
언젠가부터 글 쓰는 일, 형체가 없고 무게도 모르겠는 내 속의 무엇을 언어로 꺼내는 일의 무서움을 깊이 체감하고 있다. 내가 쓴 글자들은 내가 없는 자리에까지 간다. 때로는 인쇄된 상태로, 때로는 이진 데이터로, 때로는 내가 모르는 언어로 옮겨진 채, 때로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타고. 좋게 말하면 손오공이 머리카락을 뽑아 만든 분신들 같다.
다만 이 분신들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와 닮았는지조차 가끔은 잘 모르겠다. 설령 내가 그들 존재를 후회하게 되더라도 일을 저지른(글을 쓴) 이상 돌이킬 수 없다. 글자들은 나보다 빠르며 더 멀리 나아간다. 그 사실이 기쁜 만큼 두려운 나는 쓸 말이 없다, 하는 후렴구나 왼다.
그와 동시에 나는 지난 세월 내내 남들의 분신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본문에서 언급한 여러 소설과 시, 영화와 만화, 드라마(시트콤)와 노래, 그 외에도 하고많은 창작자가 만든 분신들. 그것들을 만든 이들이 자랑스러워하는지 후회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들의 분신 덕택에 삶의 많은 지점을 통과할 수 있었다. 거짓된 이야기와 태어난 적 없는 인물 들이 나를 먹여 살렸다. 키워주었다고 말해도 좋겠다.
[……]
아…… 결국 건배사 같은 글을 쓰고 말았다. 면구한 마음이 든다. 나는 쓸 게 없다,라고 되뇌면서도 자리만 주면 신이 나는 사람인 것이다. 앞으로도 여러 자리를 분신들과 함께 채울 수 있다면 좋겠다. 역시 신날 성싶다.
이왕 건배사처럼 쓴 김에, 이 책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온 마음 다해 감사드린다. 모쪼록 이 소설들이 나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여러분을 지지해주길 바란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자리를 마련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은 지금 이 글자와 만나는 분에게 바친다. 예상했겠지만 누구에게 책을 바친다는 말 또한 어린 시절 상상의 주요 소재 중 하나였다(책 첫머리에 적히곤 하는, ‘○○에게’ 같은 것 말이다). 오늘의 나는 바칠 게 있어 기쁘다.
2025년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함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