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본 지식을 풍부하게 해주는 콘텐츠를 모았습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거울입니다. 과거 일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과거가 아닌 현재의 문제를 좀 더 명확히 인식하게 해줍니다.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생각하는 역사에 대한 힘이 자랍니다.
단순히 역사 지식을 아는 것에서 인물을 둘러싼 환경과 그 일이 생기게 된 이유까지 생각하는 역사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 또는 한국사는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동아시아의 한반도‧만주‧연해주 지역을 바탕으로 전개된 한국의 역사이며, 광복 이전의 한국에 대한 역사를 주로 설명합니다.
한국사의 시대 구분은 구석기 시대에서부터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구분되는 선사시대와 고조선의 성립 이후 원삼국 시대·삼국 시대·남북국 시대·후삼국 시대까지의 고대·고려 시대인 중세·조선 시대인 근세·대한제국 수립 이후 오늘날까지의 근·현대 등으로 구분됩니다.
고찰하고자 하는 영역에 따라 한국의 경제사 · 한국의 생활사 · 한국의 정치사와 같이 분야별 역사로 나뉘어 다루어집니다.
본서의 특징은,
첫째, 찾아보기 쉽게 상세 목차로 가 ‧ 나 ‧ 다 순으로 구성하였습니다.
둘째, 도서명의 표기에는 를 사용하였습니다.
셋째, 인물은 역사적 사실과 흐름을 되돌아보며 좀 더 상세하게 구성하였습니다.
넷째, 문화재를 더 넓어진 시야와 사고로 역사적 사건을 짚어봄으로써, 역사의식과 역사적 사고력이 더 넓고 깊어지게 하였습니다.
다섯째, 중‧고등 교과서 속 용어 800개를 수록하였습니다.
아무쪼록 독자 여러분께 좋은 한국사 길라잡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6월 - 머리말
1908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정치와 다른 이야기속의 아빠(Dad in Politics)에서 데이비스는 첫 문장에서 정치 생활을 풍자하고 있다.
“어느 날 우리 지방부 회원인 스미스가 세상을 떠났고, 우리는 그다음 순간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정치인이 죽은 후에도 많이 기억되는 것은 아니지만, 스미스는 눈이 멀고, 편협하고, 늙은 보수당원이었으므로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았다. 정치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나라에 관한 한 대부분 죽는 것이 낫습니다….”
이 인용문은 정치 계급에 대한 호주인들의 냉소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됩니다. 피츠헨리는 퀸즐랜드 의회의 개별 의원에 대한 데이비스의 풍자적 묘사가 현실에 너무 가까워서 의회 특권 위반으로 국회 변호사에게 거의 불려갈 뻔했다고 합니다. - 머리말
책을 펼치면 청소년 논술의 힘이 펼쳐집니다
사회계약론(DU CONTRAC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은 장 자크 루소의 대표적 저술 가운데 하나로 1762년에 발행된 책입니다. 1755년 무렵부터 백과전서파와의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한 루소가 파리의 살롱 생활에서 은퇴할 생각으로 그 이전에 완성시킨 것이 이 사회계약론이며, 에밀과 같은 해에 네덜란드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이 두 책은 당시에 반드시 이해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루소는 백과전서파를 비롯한 많은 사람의 반대를 당했을 뿐만 아니라 박해까지 받아 실의와 불행의 말년을 초래했습니다.
사회계약론은 프랑스혁명의 이론적 기반이 됐으며 민주주의의 교과서이기도 합니다. 국민투표에 의한 직접민주주의 방식과 주권재민, 그리고 의회제와 같은 근대 민주주의 정치 원리가 이 책에서 비롯됐습니다. 오늘날 지방자치제를 통한 참여 민주주의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시점에서 ‘사회계약’을 통한 ‘일반의지’의 실현이라는 루소의 제안은 국민의 참여를 통한 민주주의 실현의 가능성과 한계를 가늠할 수 있는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계약론은 사회가 개인과 집단 간의 계약을 통해 성립되었다고 봅니다. 개인은 자연 상태의 대립을 막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공동체에 양도합니다. 국가는 양도받은 공동의 힘을 통해 구성원 각자의 신체와 재산을 보호하며 사회계약설 아래 왕권신수설에 기반을 둔 절대주의는 부정되고,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속하게 됩니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의 근원은 인민의 ‘일반의지’에 있습니다. 일반의지는 국민 전원의 찬성이라는 만장일치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국민투표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지만, 다수결의 정당성은 투표의 결과에 따르겠다는 구성원 전체의 일반의지에 의해서만 인정됩니다. 따라서 국가를 구성하는 법률은 일반의지의 표현이어야 하고, 정부는 법률이 정한 범위 안에서만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정부의 통치가 일반의지에 반할 경우, 국민은 언제든 의회를 소집해 행정가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루소에 따르면 정부는 주권자인 인민의 권리를 대행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이 인민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판단될 경우 ‘국민은 원할 때 행정가에 대한 임명과 퇴임’을 결의할 수 있습니다. 주민소환제는 지방정부의 행정이 지역 주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따지는 것입니다. 지역 행정가의 소환을 통해 국민의 정치 참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주민소환제는 민주적인 방식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에 의한 행정가의 소환은 일반의지에 합치될 때에만 정당성을 지닐 수 있습니다. 주민소환제 역시 지역 주민의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일반의지를 대변한다고 판단될 때에만 민주적인 실천이 될 수 있습니다. 최근의 사례처럼 혐오시설을 유치했다는 이유로 행해진 주민소환은 지역이기주의적인 발상으로 사회 전체의 일반의지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루소가 무엇보다 경계했던 것이 지역이기주의입니다. 루소는 당파의 등장을 반기지 않았는데, 사회 전체의 의견이 당파 수만큼 제한될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국가의 정책이 몇 개 당파의 이익에 좌우된다면, 국민 전체의 합의에 기반을 둔 일반의지의 보편성은 훼손될 것입니다.
사회계약론은 장 자크 루소의 대표적 저술 가운데 하나로 1762년에 출판된 책입니다. 1755년 무렵부터 백과전서파와의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한 루소가 파리의 살롱 생활에서 은퇴할 생각으로 그 이전에 완성시킨 것이 사회 계약론입니다.
사회계약론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인간 불평등기원론과 다를 바가 없으나 전자에는 새로운 사회의 적극적인 구상이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후자를 발전시킨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전체는 4편으로 나뉘는데 이론적인 기본은 ‘일반의지’론과 ‘사회 계약’론의 둘이다. ‘일반의지’란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인간의 의지를 말합니다. 루소는 사회 상태에서 그것을 실현시키려 했으나 그는 그것을 인간의 의지 속에서 발견한다. 인간의 일반의지야말로 주권의 기초이며 법이나 정부도 여기서 나옵니다. 이 국민의 일반의지는 절대적이며 그르친다는 예외도 없고, 타인에게 양도나 분할도 불가하다. 따라서 주권 또한 절대적입니다. 루소의 인간주권론은 가장 철저한 인간주권론이며, 더구나 그는 거기서 인간 주권의 절대성이라는 결론을 끌어냅니다. 따라서 루소가 구상한 국가는 의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직접민주제의 국가입니다. 국민의 일반의지에 바탕을 둔 국가를 형성하는 순서 또는 절차를 제시한 것이 ‘사회 계약’론입니다. 각 개인은 자유와 평등을 최대한으로 확보하면서 공동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하나의 약속을 하고 국가를 형성합니다. 이 약속이 사회계약입니다. 그것은 주권자인 개개인 상호 간의 약속이며, 지배자에 대한 국민의 복종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자유는 스스로 부과한 법에 복종함으로써 찾을 수 있습니다.
사회계약론은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지만, 현실에서의 한계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닙니다.
청소년 논술에게 힘이 펼쳐지기를 기원합니다.
2025년 2월 - 머리말
청소년 필사 교과서 두 번째 이야기
“이재명 대통령이 걸어온 길”
이재명 대통령은 1963년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 마을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1976년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족과 함께 경기 성남시 상대원동 꼭대기 월셋집으로 온 가족이 올라왔다.
열두 살 소년은 진학 대신 목걸이 공장 ? 고무 부품 공장 ? 냉장고 공장 등을 6년간 전전했다. 아버지는 동네 쓰레기를 치웠고 어머니는 상대원시장 화장실에서 청소했다. 자식 공부보다 번듯한 집 한 채를 마련하는 게 우선인 아버지 아래서 중 ? 고등학교 진학은 그림의 떡이었다.
여섯 번째로 취업한 스키 장갑과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공장에서 프레스에 왼쪽 손목 관절이 눌리는 사고를 당했다. 밥벌이가 급했던 형편에 수술을 받긴 어려웠다. 이때 후유증으로 왼팔은 손목이 뒤틀린 채 굽었고 6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팔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에 다락에 연탄불을 피우고 수면제 스무 알을 먹었지만 멀쩡하게 눈을 뜨고 일어났다. 수면제를 찾는 소년을 보고 상황을 짐작한 약사가 수면제 대신 소화제 같은 것을 잔뜩 줬던 것이다.
1981년 사립대학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특별장학생 제도가 도입되자 마음을 다잡고 대입을 준비했다. 3학년까지 등록금 전액을 면제받고 매달 생활비 20만 원을 받는 중앙대 법대에 합격했다. 공장에서 받던 월급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어머니는 “재맹아, 내는 인자 죽어도 한이 없대이”라고 했다.
1986년 겨울 스물셋에 두 번째 도전 끝에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아버지는 그해 3월 위암 재발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고 이 대통령이 합격 사실을 전한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
사법연수원 생활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지연과 학연, 집안을 자랑하는 연수생들이 많았고 몇몇은 연줄 없는 연수생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운동권의 지하서클 조직인 비공개 기수 모임에서 활동했다. 당시 모임에는 문무일 전 검찰총장과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 최원식 문병호 전 의원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지명된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에 반대하는 연수원생 성명을 주도했다.
사법연수원 성적은 상위 30% 안팎으로 좋았지만, 판사나 검사 대신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연수원 시절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을 듣고 판검사가 아니어도 먹고살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어 인권변호사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연수원 2년 차에 인권변호사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 실습을 했다.
1989년 성남시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성남공단의 노동 사건과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건, 경원대와 한국외국어대 등 구속된 학생들의 변호는 물론 시국사건 양심수들의 사건도 무료로 맡았다. 일주일에 두 번은 이천노동상담소를 찾아 노동운동을 지원하고 노동법률 상담을 했다.
변호사로서 이름을 알린 건 ‘성남시민모임’ 집행위원장으로서 2000년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의혹을 제기했을 때다. 그와 함께 활동했던 인사는 “김대중 정부였고 유죄 판결을 받은 김병량 당시 시장도 원래 우리가 밀던 분”이라며 “그럼에도 부당한 일에 반대하는 이 대통령을 보면서 패기 넘치는 변호사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2002년 5월 기자회견을 열고 최철호 전 KBS PD와 김병량 당시 시장의 통화 내용을 폭로했고 이른바 ‘검사 사칭’으로 벌금 150만 원 형을 받았다.
성남 구시가지 대형 병원들이 문을 닫으며 의료 공백이 심각해진 2004년 성남 공공의료원 설립을 목표로 시민 2만 명의 뜻을 모아 주민 발의 조례를 만든 것도 정계에 투신하는 계기가 됐다. 어렵게 만든 조례는 시의회에서 47초 만에 날치기 부결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방청하던 시민들과 항의하다가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수배됐다.”며 “성남시의료원은 제가 정치를 결심한 이유”라고 했다.
2006년 성남시장 후보와 2008년 성남 분당갑 국회의원 후보로 도전해 고배를 마셨지만, 2010년 제19대 성남시장으로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전임 시장이 진 빚 5,200억 원을 단기간에 갚을 수 없다.”며 모라토리엄을 선언해 이목을 끌었다. 이후 3년 6개월간 예산 삭감, 긴축 재정 등을 통해 모든 빚을 갚아 모라토리엄을 졸업했고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기도 했다. 성남시장 시절 추진한 무상 교복 ? 공공산후조리 지원 ? 청년 배당 등 보편적 복지 사업은 그의 브랜드가 됐다.
‘변방의 장수’였고, 중앙 정치무대의 주목을 받은 건 2016년 지방자치단체 예산권을 둘러싼 박근혜 정부와의 갈등으로 11일간 단식 농성을 하면서부터다. 같은 해 10월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자 제도권 정치인 중 처음으로 박 대통령 하야를 공개 주장했다. ‘사이다’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2017년 대선 경선에 출마해 3위에 그쳤지만 대선 주자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2018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됐고 경기도정을 이끄는 동안 기본소득을 비롯한 ‘기본 시리즈’를 내세우며 권토중래에 나섰다.
2021년 10월 대선 경선에서 승리했지만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등이 검찰 수사로 이어지면서 2022년 3월 본선에서 0.73%포인트 차로 패배했다.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같은 해 8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권을 잡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계엄 해제를 주도했다. 비상계엄 소식을 듣고 국회로 가는 길에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국회로 와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조기 대선이 확정되자 민주화 이후 가장 높은 경선 득표율인 89.77%의 득표로 민주당 경선에서 압승했다. 대선 유세 과정에선 “개인 이재명의 승리가 아니라 내란 종식과 민생 회복을 바라는 국민의 승리, 상식의 승리, 정의의 승리, 민주주의의 승리를 국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과 ‘빛의 혁명 완수’를 내세우며 21대 대통령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사와 당선 소감문,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문을 필사해 보자. 필사를 해 보면 이재명 대통령이 보입니다.
2025년 6월 10일 엮은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