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조선 레지스탕스의 두 얼굴》의 후속작이다. 전편에서 다루지 못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에 대해 기존의 통설을 배제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우리가 주입식으로 배워 온 근현대사는 사실의 취사선택을 넘어 창작 수준의 왜곡을 저지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음에도, 우리 헌법은 3.1운동이나 임시정부의 수립, 4.19 의거와 같은 사건을 전문에 수록함으로써, 단 하나의 평가만이 존재하도록 성역화하고 말았다. 역사 해석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만큼 위험한 시도는 없다.
3.1운동은 더 이상 무저항, 비폭력 민중운동으로 분칠해서는 안 되며, 임시정부 법통론도 한낱 허구에 불과함을 직시해야 하다. 이와 관련한 인물들과 단체들의 실상도 더 이상 미화되어서는 곤란하다. 유관순의 경우 감옥에 투옥된 후에도 만세를 부르다 고문당해 순국했다는 식의 영웅적 담론이 오랫동안 우리를 길들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란 눈의 애국자로 둔갑된 외국인들에 대해서도 냉정한 시각이 요구된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다고 볼 근거가 없음에도, 이들을 영웅시 하는 것은 우리의 일방적인 사모곡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민족에 대해 일말의 애착도 없었던 사람들이며, 반일감정에 편승해 자신의 사복(私腹)을 채우거나, 적국과 내통하여 결과적으로는 우리 민족에 해를 끼쳤던 인물들에 불과하다.
나아가 독립운동이라는 명분 아래 자행된 일부 단체와 인물들의 인권유린과 범죄, 그리고 주도권 쟁탈을 위한 동족상잔의 비극들을 더 이상 감추어서도 안 된다. 단지 일본에 맞섰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모든 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찬양하는 식의 독립운동 서사는 역사에 대한 감정적 소비를 부추길 뿐, 진실을 밝히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뽕과 자기합리화를 위한 수단으로 역사를 들먹이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감추고 싶은 치부일수록 더 살펴 배워야 진정한 교훈을 얻는다. 그것이 역사를 배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단지 과거의 흠결을 들추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