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읽던 동화책 속 세상은 따뜻했지만, 막상 맨발로 나와 보니 세상은 얼음장 같았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 버린 한때의 아이들,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갈 아이들을 여럿 알고 있다. 나는 이 소설 속 아이들처럼 ‘아직 죄를 지은 건 아니지만 곧 저지를지도 모를’, 회색지대에 있었다. 겉으로는 아닌 척했지만 머릿속은 혼란스럽고, 마음에는 분노가 들끓었다. 그 공격성은 어느덧 내 자신에게로 향했다. 내가 무사히 자라 소설을 쓸 수 있는 건 주변 사람들의 인내와 사랑 덕이다. 그러나 지금도 회색지대를 걷는 기분이다. 이 통과할 수 없는 땅에서 버티며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
청소년은 미래, 희망 같은 추상적이고 듣기 좋은 단어와 강제로 결합된다. 그러나 청소년기는 특별하고 구체적인 과거를 만드는 시기 같다. 좋은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늘 마음에 남을 과거, 평생 따라다닐 기억 말이다. 여러분은 2050년 늦가을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오늘 친구와 있었던 일을 떠올릴 것이다.
지금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일은 잘 잊히지 않는다. 어릴 때 진심으로 읽은 몇 권의 책이 아직 내 옆에 있듯 지금 생성되는 독자 여러분의 특별한 과거가 내내 따뜻한 추억이 되길 바란다. 이 소설이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2050년 늦가을에 떠올려 준다면 나는 정말 기쁠 것 같다.
당신의 삶이 진짜 소설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나는 무모하게 물에 뛰어들었다. 풍랑주의보가 아직 해제되지 않은 바다에.
먹장구름 탓에 영일만은 시커멨고, 파도도 검게 보였다. 트럭만 한 파도가 연거푸 나를 때리고 깊은 바다로 끌고 갔다. 파도가 요란한 날에는 아무도 바다 근처에 나오지 않았다. 비명을 질러도 파도 깨지는 소리에 묻혀 누구도 듣지 못했다. 오만했던 나는 파도를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선택해야 했다. 이대로 죽을지, 발버둥이라도 쳐볼지. 입을 앙다물고 방파제 쪽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면 누군들 물에 빠져 죽을까. 파도는 나를 놔주지 않았고, 나는 양동이 속의 개미처럼 버둥거리기만 했다. 힘은 순식간에 빠졌고 정신도 몽롱해졌다. 간신히 방파제의 테트라포드를 붙잡았지만 이끼 때문에 미끄러워 밟고 올라설 수 없었다. 테트라포드에 들러붙은 따개비 탓에 팔다리가 찢어져 피까지 흘렀다. 얼마 동안 버텼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조금만 더 흘렀다면 난 분명 죽었을 것이다.
그분이 누군지는 모른다. 같은 동네에 살던 분은 아니었다. 방파제 부근에서 피 흘리며 어떻게든 버티는 내게 기다란 대나무 장대를 내밀어주셨다. 생명선이었다. 그걸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힘껏 움켜잡았다.
괴롭거나 주저앉고 싶을 때는 그날을 떠올린다. 그리고 어떻게든 돌파하려고 발버둥 친다. 좋은 경험은 또 다른 좋은 경험을 만드는 법이다.
나의 글을 읽어주시는 고마운 분들께도 내 책이 좋은 경험이 되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아직은 턱없지만, 언젠가는 그리되고 싶다.
인생에는 하고 싶지만 불가능한 일과, 가능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밖에 없다고 괴테가 말했던가. 글쓰기는 내게 하고 싶으면서도 가능한 일이다. 가능은 하지만 어설프다. 설익은 걸 내 자신이 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하고 싶으면서 가능한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여지가 있다고 믿는다.
양가 부모님, 특히 가장 진실한 글이란 어떤 것인지 인생을 통해 보여주신 엄마와 장모님께 감사드린다. 소설을 쓰기는커녕 읽지도 않던 나를 이끌어주고 늘 보살펴주는 아내에게는 굳이 따로 고마움을 표할 필요도 없겠다.
2021년 가을의 문턱에서
금성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