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에르보는 이 숨은그림찾기 책에서 동생 이야기를 한다. 동생의 머릿속은 위태롭게 비탈져, 헤치고 걸으면 발목이 베일 듯 얇고 가칠한 사초가 무성하고,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이 성마르게 뻗어 서로 찌르는 듯하다고 한다. 인적 희미한 과목밭에서 나무들이 저 홀로 살아간다고도 한다. 눈 감은 고양이 얼굴이 화면을 한가득 채우므로, 독자는 작가가 이 동물을 인격화한다고 추론하게 된다. 목적을 모르게 헤매고, 원인을 모르게 겁에 질리고, 이유를 모르게 우는 동물의 정신과 행동을, 동생처럼 아끼고 사랑하되, 인간 타자로서 함부로 안다고 자신하지 않으며 관찰하고 서술하는 것이다.
(…)
에르보의 동생 이야기는 관찰한 사실을 판별과 진단의 언술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시의 영역으로 상승시킨다. 일례로, 왜냐하면 왜냐하면 왜냐하면, 팔리랄리아(palilalia)라는 명칭을 지닌 동생의 반향 습관을, 동생은, 동생은, 동생은, 에르보는 시행이나 문장의 서두에서 동일한 어구를 반복하는 아나포라(anaphora)로 옮겨 받는다. 왜냐하면 다음에 다른 말을 안 하는 동생의 함묵은 언어 능력의 결핍이나 발달 장애가 아니라 엄연한 시작법임을 일깨우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고 동생은, 프랑스어 음가를 그대로 표기하자면, 팍스크 팍스크 팍스크…… 마 쇠르…… 마 쇠르…… 마 쇠르…… 흡사 캐논의 시적 변주일까. 책은 동생과 언니가 주고받는 이중창의 악보가 된다.
(…)
에르보에게 동생은 무엇보다 사랑의 존재이다. 동생의 사랑은, 옥시모론의 사랑은, 선을 그어 나누기를 모르기에, 한달음으로 말하고 한입에 먹는 크나큰 사람의 이 사랑을 번역하려면, 온과 한, 두 소리가 열어 이끄는 낱말들을 전부 그러모으고 싶어진다. 온통, 온몸, 온밤, 온음, 온갖, 온누리, 한껏, 한숨, 한참, 한결, 한낮, 한아름, 한마음, 한꺼번, 한바탕, 한가득……
그리고 가없음.
무궁.
_ 윤경희, 「옥시모론의 사랑을 위하여」 부분 - 해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