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내가 최영숙에 관해 읽고 쓰는 동안 가장 많이 떠오른 단어는 의외로 사랑이었다. 최영숙은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고 그만큼 큰 사랑을 품은 사람이었다. 그가 간절히 만나기를 바랐던 다음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조금이나마 그 사랑을 최영숙에게 돌려주고 싶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실은 조금씩 최영숙에게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통해 증명하고 열어젖히고자 했던 그 작은 미래의 틈 속으로, 비로소 손을 비집어 넣어 다음 세계가 더 가까워졌을 것임으로. 우리가 꿈꾸는 더 밝은 세계로. - 에세이 「어느 계절에」 중에서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그 작은 방에서부터 소설을 써왔던 건 아니었을까. 왜 하필 소설인가, 라는 질문에 그것은 언제나 소설이었다는 대답. 어릴 적 그 방에서 시작한 이야기의 씨앗을 키우기 위해 지난 수십여 년을 살아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렇다면 내가 했던 성과 없는 허무한 모험들에도 다 제각각의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대는 작은 여자아이들의 방은 이제 내 마음속에 있다. 여행 끝에 도착한 곳은 소설이었다. 그 세계는 거대하지만 단 한 권의 책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기도 하다. 나는 이 세계를 사랑한다. 그렇다.